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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하기

해군52 2002. 10. 9. 22:59

<경사에는 못 가더라도 조사에는 꼭 가야한다>

내가 비교적 잘 지키고 있는 생활의 원칙이다

몇년전부터 한동안 어려운 일들이 계속 생길 때
누군가가 내게 이런 조언을 했다
내가 너무 문상을 자주 다니다 보니까
혼백들이 내게 달라붙어서 일이 잘 안 된다고 말이다
실제 그런 이유로 문상을 다니지 않는 친구도 있긴 있다

그럴리도 없겠지만 나 잘 되겠다고
친구나 친지들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문상을 안 간다는게 말이나 되나?

여하튼 부고 연락을 받으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문상을 간다
그러다보니 문상을 자주 가는 편이다
1달이면 평균 3번쯤 (환절기에는 많고)
어느 날은 하루에 빈소 두곳
심지어는 한 영안실에서 두곳에 들르게 되는 일도 있었다

부고 연락을 하고 문상을 가고 부의금을 내는 것도
세상이 변해 가면서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직장에서 직원의 부모상만을 공지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장인장모상도 공지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그 구별이 거의 없어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장인장모상에 문상하는 것은
아주 가까운 사이이거나
부인과 특별한 만남이 있었던 경우에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장인장모상은 알게 되도 문상까지 가지는 않는다

내 고등학교 동기회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고
주위의 친구들 대부분이 그러는데
가끔씩은 다른 경우도 있어서 당혹스럽다

어느 모임의 회원 한분이 장인상을 당하셨다고 듣고도
나는 그냥 지나쳤는데 여러 회원들이 문상을 다녀와서
나중에 모임에서 그 분을 만났더니 아주 어색했다

지난 봄 장모님이 입원하셨던 그 즈음에
가까운 친구 장모님도 입원을 하셨다
한동안 정신이 없어서 그 친구와 연락을 못 하다가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니
그 사이에 그 친구 장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면 왜 연락을 안 했냐고 했더니
처가에 형제들도 많고 해서
친구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그 친구 약혼식 사회 보던 것부터 시작해서
그 처갓집 어른들도 몇번 만나 뵌 일도 있고
부부동반 모임도 자주 하는 사이인데
그 친구가 그리 했으니 그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 친구 부인에게 늦게나마
사과와 함께 조의를 표하긴 했지만
기분이 영 떨떠름했다

그렇다면 내 장모님이 돌아가셔도
그 친구에게는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하나?

문상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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