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마르 베리만 Ingmar Bergman (1918~2007) 스웨덴
스웨덴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베리만 감독은 유년
시절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종교에 일찍 눈을 떴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부친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된 탓에 그의
영화에는 가식적인 목사나 어른이 등장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스톡홀름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하며 연극 활동을 했고,
졸업 후 왕립오페라단에서 희곡과 오페라를 썼으며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연극과 영화 연출가로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했다
본격 영화 연출을 시작한 50년대 초에는 주로 가벼운 희극을
만들다가 <제7의 봉인>(1957)으로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이후 <처녀의 샘>(1959)과 <산딸기>(1957)까지 ‘신의 3부작’,
‘예술가 3부작’으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예술영화들을 만들었다
베리만 감독은 삶과 죽음, 종교 등 형이상학적 주제를 자신의
영화에서 다룸으로써 영화를 얕보던 당시 지식인들을 놀라게
하면서 5,60년대 유럽 예술영화를 이끄는 스타 감독이 되었고,
신의 존재와 인간의 구원을 집요하게 질문한 영상 철학자이자
수많은 걸작들을 남긴 20세기 최고의 감독으로 칭송받고 있다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하고 대중적 성공까지 이어가던 베리만
감독은 탈세 혐의로 연극 공연 중 체포되어 기소까지 되면서
심각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무혐의 처리되었지만
독일을 거쳐서 미국 할리우드로 건너가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베리만은 8년간 스웨덴을 떠나 살면서 스웨덴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베리만 감독이 국제영화제에서 받은 상은 수도 없이 많았는데
베니스영화제에서 ‘캐리어 황금사자상’(1971)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중의 황금종려상’(1997)이란 특별한 상을 받았고,
작품 3편이 아카데미 외국영화상을 받아 대중성도 입증되었다
베리만 감독은 후대 감독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그를
추종한 유명 감독들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스탠리 큐브릭,
길예르모 델 토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우디 알렌 등등이다
그의 영화에 단골 출연한 배우로는 군나르 뵈른스트란드(23편),
엘란드 조셉슨(14편), 막스 폰 시도우와 비비 안데르손(이상
13편), 잉그리드 튤린(10편), 리브 울만(10편) 등이 손꼽힌다
그는 평생동안 다섯 번의 결혼과 네 번의 이혼 이외에 연인이
세 명 있었으며 그들과 사이에서 모두 9명의 자녀를 얻었는데
자녀들 직업은 감독 3명, 배우 3명, 작가 2명, 조종사 1명이다
TV포함 연출 70편, 각본 79편/수상 85회, 후보 62회
무허가 막간극 (1951) 베니스 황금사자상 후보
여자들의 꿈 (1952) 베니스 황금사자상 후보
모니카와의 여름 (1953)
한여름 밤의 미소 (1956) 칸 시적 유머상
제7의 봉인 (1957) 칸 심사위원대상
산딸기 (1957)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베를린 금곰상
마술사 (1958) 베니스 심사위원특별상
생명에 가까이 (1958) 칸 황금종려상 후보, 감독상
처녀의 샘 (1960) 칸 황금종려상 후보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1961)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베를린 금곰상 후보
페르소나 (1966)
외침과 속삭임 (1972)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후보/칸 기술대상
고독한 여심 (1976)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가을 소나타 (1978)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
화니와 알렉산더 (1982) 아카데미 감독상&각본상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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