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찍은 사진 111

사진 달력 만들기

내 사진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사진들 중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몇 장으로 2023년 달력을 만들었다. 제작사 앱에 들어가서 작업하다 보니 손에 익지 않아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처음에는 완전 나만의 달력이라 생각하고 3부만 주문했다가 조금씩 늘이다 보니 결국 63부까지 됐다.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야 할 사람, 내 사진에 관심을 보였던 또는 보일만한 사람... 그중 2/3는 만나서 직접 전했는데 여러 명 모인 자리에서 한두 명에게만 전하기가 좀 불편했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나눠주자니 비용도 비용이지만 받는 쪽에서 판촉물처럼 생각할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나머지 1/3은 우편을 통해 보냈는데 달력 만든 취지 설명과 함께 주소 확인, 포장, 우체국에서 발송 등 일이 제법 많았다. 내 눈에는 첫 작품치고는..

내글모음 2023.01.04

빛과 그림자

그림자는 착하다 - 신천희 내가 하는 짓을 보고 그대로 배우는 그림자는 착하다 밝은 곳에서 떳떳하게 하는 짓은 좋다고 따라하지만 어두운 곳에서 몰래하는 짓은 절대 따라하지 않고 도망가 버린다 열 달이 지난 손녀와 놀다 보니 여러 놀이를 하게 된다 거울 놀이는 지났고 요즘 그림자 놀이를 새로 시작했다 해가 비치는 창가에서 손이나 장난감으로 마룻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 움직이면 그림자를 잡으러 쫓아다닌다 그림자는 실체와 빛이 만드는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손녀가 깨닫기까지는 아마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 어른들이 문창호지 위에 손으로 만든 그림자 개나 새를 보면서 신기해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좀 커서는 햇빛 아래 걸어갈 때 발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따라오는 그림자를 떼어놓으려 했던 기억도 ..

사진따라 2021.03.20

서울의 찬가

서울記 - 김명배 Ⅰ 빌딩의 숲을 보아라, 層層이 가득 찬 사람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Ⅱ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과 어디쯤에서 만날까, 몇 時쯤에. 내려가야지, 내려가야지. 구름도 層層, 하늘도 層層이다. 나의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 배경은 안암동이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입학했다가 신설 학교로 전학했고, 4학년 중간쯤 영등포로 이사하면서 다시 학교를 옮겼다 그 당시 영등포는 행정구역상으로 서울이기는 했었지만 포장도 안 된 도로는 비가 오면 진탕길이 되고(진등포!), 해가 나와서 맑은 날이면 먼지가 풀풀 날렸다(먼지포!) 지금의 시청이나 광화문처럼 사대문 안쪽만을 시내라고 불렀으니 강 건너 영등포는 사실상 서울이 아닌 셈이었다 그런 영등포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해서 아이..

사진따라 2021.03.13

춤은 곧 바람?

1985년경 MBC TV가 중앙일보 문화센터의 댄스스포츠 강습 과정을 취미활동의 사례로 취재해서 방영했다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방송윤리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한 칼럼니스트가 조선일보 고정 칼럼난에 춤의 퇴폐성에 대한 글을 올렸다 나는 그 방송 이전에 바로 그 문화센터에서 댄스스포츠를 오래 배웠고, 그 중 몇 강좌는 아내와 함께 다니기도 했다 그곳은 퇴폐의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는 건전한 곳이었다 그런 일로 나는 방송윤리위원회의의 공정성을 의심했고, 그 유명한 칼럼니스트의 글은 더 이상 읽지 않게 되었다 댄스스포츠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자 국내에서도 댄스를 생활체육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 지자체 문화센터에도 경쟁하듯 댄스스포츠 강좌가 열렸다..

사진따라 2021.02.07

다방과 찻집

학림, 독수리, 챔피온, 약속, 꽃, 타임, 애플, 돌체, 코러스... 70년대 서울에 살았던 청춘들이 기억할만한 다방들이다 다방(茶房)이라고 하지만 찻잎을 우려 마시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요즘과는 많이 다른 맛’의 커피나 홍차를 마셨다 메뉴에는 계란 노른자를 넣은 모닝커피나 쌍화차는 물론, 계란 반숙까지 있었으니 계란이 많이 소비되는 곳이었다 휴대폰은 당연히 없었고 집 전화도 귀했던 그때 그 시절 다방은 친구나 연인과의 약속 장소이었고, 때로는 죽치고 앉아 있다가 약속도 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만나기로 또는 만나려고 했던 사람을 만나지 못 했을 경우 전할 말을 종이에 적어서 꽂아 놓는 메모 게시판이 있었다 듣고 싶은 음악을 쪽지에 적어서 신청하면 들여다보이는 유리상자 안에서 DJ가 레코드..

사진따라 2021.01.30

발의 호강

두 발로 일어서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인간의 발은 건물의 주춧돌처럼 온몸의 무게를 전부 지탱하기 마련이다 그런 발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일상생활이 불편해지고 무릎, 골반, 허리, 목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고 한다 ‘발의 건강이 인체의 건강’ 또는 ‘발은 제2의 심장’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지만 평소에는 대부분 잊고 지낸다 양말과 신발 속에서 열악한 환경과 가혹한 업무를 견디다 못한 발이 고통을 호소할 때쯤이면 문제가 상당히 악화된 상태라서 이를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걷기를 즐겨하다 보니 내 발도 엄청나게 혹사당해 왔다 도보여행이나 트레킹 다니면서 발이 과로할 때가 많았다 발톱이나 발꿈치 또는 발목에 이상이 생겨도 어지간하면 강행군이니 주인 잘못 만난 내 발이 고생을 많이..

사진따라 2021.01.22

그리운 얼굴

맨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라는 이름의 바이러스에 모든 사람들의 발이 묶여버린지 어느새 1년이 넘었다 내로라하는 제약회사들이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코로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는 아직도 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서 생계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 사람들의 어려움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작은 불만이기는 하지만 마음대로 나다닐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답답하고 게다가 언제까지라는 기약도 없으니 우울하기까지 하다 심지어는 명절에도 부모나 형제들이 마음대로 만나지 못 하는 세상이니 새로운 형태의 이산가족인 셈이다 나의 경우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즐거움도 아주 오래 전 일인 듯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지나간 여행을 돌이켜보면 기막힌 경치..

사진따라 2021.01.15

눈사람

눈사람 - 함민복 굴러굴러 몸 만들었구나 차고 둥근 물알 두 개 평편하게 한 세상 살지 않고 끝 찾아 다시 펼쳐 놓고 싶은 눈사람 사람눈 ‘눈사람’으로 검색하니 이런 재미있는 사진이 보인다 제주시청 앞의 돌하르방이 마스크를 쓴 것은 그렇다 치고 그 옆에 빨간 당근 코를 한 채 서 있는 눈사람이라니! 제주도가 워낙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 공무원 입장에서는 눈 치울 걱정 때문에라도 폭설이 전혀 반갑지 않았을텐데 이런 발상을 한 제주시청 공무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시청을 방문하는 많은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누군지 전혀 모르지만 아마도 시민들과 소통도 잘 하고 업무에서도 열린 사고를 하는 분일 거라고 상상해 본다 내 사진 창고에서 눈사람 사진을 찾아봤더니 많지도 않고 내용도 밋밋한 편이라 포토에세..

사진따라 2021.01.09

묵언 수행

지하철은 묵언 수행 중 - 홍승원 조용히 고개숙여 세상 진리를 구하나니 말도 필요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친구도 필요없네 이 네모나고 작은 물건에 진리가 있고 길이 있나니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세상의 기쁜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즐거운 일 모두 알 수 있네 지하철은 오후 2시를 지나고 오늘도 사람들은 이 신기한 물건에 감탄하며 경외하며 묵언 수행 중 검색하다가 어느 동창회 카페에서 발견한 시인데 요즘 흔히 보는 지하철 풍경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시인의 이름으로 검색해 봤지만 다른 내용이 전혀 없는 걸 보면 아마도 전문 시인은 아닌 듯하다 위 시가 묘사한 장면과는 상당히 다른 상황이지만 도보여행 다니다가 숲길에서 나뭇잎 스치는 소리나 고즈넉한 산사에서 풍경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이런 작은 소리에 귀를 기..

사진따라 2021.01.01

둘이서

홀로 서기 – 서정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7연의 시 중에서 1연) 7연으로 구성된 긴 시 중에서도 1연의 마지막 구절은 시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나에게도 제법 익숙하다 시인이 대학생 시절 교지에 발표한 시라고 하는데 젊은 학생들 사이에 폭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거의 매일 낭송되었다고 한다 입소문으로 알려진 이 시가 1987년 시집으로 나오자 2년 연속 모든 책을 통틀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출판사는 빌딩을 세웠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

사진따라 202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