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음악 3월 4일(월)✱
▲내일 경칩(驚蟄)!
◾깨어나는 봄
◀봄이 오는 소리
◼안형렬(테너)
◀나물캐는 처녀
◼로미 패트릭(소프라노)
✕김남두(테너)
◀봄 처녀
◼신델라(소프라노)
◀강 건너 봄이 오듯
◼임선혜(소프라노)
◉만물(萬物)이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내일입니다.
우선 숨어서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는 날입니다.
벌써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다니는
다람쥐와 벌 같이
성질 급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도
기지개를 켜고
나설 준비를 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봄이 깨어나는
때입니다.
◉경칩은 또한
부활(復活)의 날입니다.
여러 생명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초목이 새 생명을 잉태하는
때이니 그런 의미를
부여할 만합니다.
옛 위정자들은 이날을
가벼운 죄를 지은
죄수들을 방면하고
고아나 자식 없는 노인을
보살펴 주는 날로
삼았다고 합니다.
요즘 같으면 광복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나
있을 만한 조치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날은 예로부터
모두에게 희망의 봄을 여는
축일(祝日)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칩은
옛 청춘 남녀들에게도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은행을 주고받으며
남녀가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은 암수가 마주 봐야
열매를 맺는 ‘사랑의 나무’
열매를 가을부터 모아 둡니다,
그랬다가 봄이 깨어나는
경칩에 은행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칩은
지금의 발렌타인 데이와
비슷한 날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져 버린
아쉬운 전통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경칩 날엔
중요한 금령(禁令)이
내려졌습니다.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입니다.
금령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절대 불을 놓지 말라!’
그때나 지금이나 통상적으로
이때가 건조기입니다,
마른 낙엽이 곳곳에
쌓여있습니다.
아직 겨울눈을 열지 않은
나무들도 바싹 말라 있습니다.
여기에 봄바람까지 불어서
불이 나면 대형으로
번지기 일쑤입니다.
◉지금 미국 텍사스주의
사상 최대 대형산불은
서울의 7배 넓이의 숲을
불태우면서 열흘째 계속
번져가고 있습니다,
눈비가 내렸어도 불길을
잡지 못하고 진화율은 겨우
15% 전후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에
강풍까지 불어 이즈음
겨울 끝의 북반구 어디나
비슷한 상황입니다.
전기 스파크 한 번이면
더 큰 산불이 발생해
번져 나갈 수 있다는
미국국립기상청 관계자의
우려와 경고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2년 전 바로 오늘
울진에서 발생했던
대형산불을 생각해 봐도
끔찍합니다.
올겨울은 눈과 비가 잦아서
상대적으로 좀 나은 편이지만
숲이 건조하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아직은 큰 산불 발생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언제나 위험이 있습니다.
봄의 길목에서 일어나는
대형산불은 사람에게는 물론
봄을 기다리며
겨울눈을 키워온 초목에게도,
힘든 겨울을 보낸
야생동물에게도,
이제 막 깨어난 벌레들에게도
희망의 봄 대신
암담한 봄을 가져다줍니다.
◉주말 산책길에
논두렁 밭두렁 근처에서
불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칫 큰 산불의 화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좀 더 조심했으면 하고
지켜보게 됩니다.
초봄에 산불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는 요즈음입니다.
◉3월의 시작과 함께
매서운 꽃샘바람이
한차례 다녀갔습니다.
지난번 말한 서양 속담처럼
3월이 사자처럼 등장했습니다.
그 뒤 끝에 봄눈까지
한차례 내렸습니다.
한두 차례 더 올 건지
아니면 마지막 봄눈인지
알 수 없지만 봄눈 녹아
처마 끝에 떨어지는 소리는
봄이 오는 소리입니다.
가곡 ‘봄이 오는 소리’부터
들어 봅니다.
시인 이상목의 시에
서정 가곡 작곡가 황덕식이
곡을 붙였습니다.
◉이상목 시인은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산 지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곳에서 건축사와 사진작가
그리고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고국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지가 오래됐지만
봄이면 록키산으로 봄의 소리를
듣기 위해 간다는 소식을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건축학을 공부했던 그는
시조 시인으로 등단한 뒤
황덕식 작곡가와 함께 가곡
‘봄이 오는 소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동 출신인 황덕식 작곡가는
음악 교사로 출발해
마산고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뒤에도 음악 활동을
이어가며 노익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소리, 바람 소리
여러 가지 봄의 소리가
들려오는 요즈음이지만
진정한 봄의 소리는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봄을 향한 소리입니다.
‘내 작은 가슴에
살며시 피어나는 봄의 소리’
베르디 국립음대에서 공부한
테너 안형렬입니다.
https://youtu.be/wT7y1t7Vq5k?si=BhQGwC6GMtFCw4c5
◉봄을 느끼게 하는
최상의 봄나물은 단연
냉이입니다.
특유의 향긋한 향과
쌉쌀한 맛은 그대로
봄의 맛입니다.
그래서 냉이를
‘입안의 봄’으로 불러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냉이가 들어간 된장찌개나
냉이로 끓인 국은
봄철의 입맛을 살려줍니다.
냉이를 넣고 끓인
라면의 맛은 또 어떻습니까?
‘냉이라면’이 왜 안 나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논두렁 밭두렁과
밭고랑 사이에 지금 냉이가
잔뜩 자리 잡았습니다.
그동안 잎을 땅 위에
붙인 채로 겨울을 났습니다.
땅에 납작 엎드린
방사선 모양으로
겨울 찬바람을 견뎌냈습니다.
대표적 로제트식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와중에도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만들어 뿌리에
잔뜩 저장해 두었습니다.
이제 봄이 왔으니
고개를 들고 존재를
과시해도 됩니다.
◉혹독한 겨울에는
씨앗 속에 몸을 숨기고
땅속에서 지내는 것이
편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숨어지내다가
봄이 온 뒤에 싹을 틔워서는
너무 늦습니다.
그래서 냉이는 싹을 틔운 채
겨울을 납니다.
그렇게 되면 봄에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찾아오는 곤충이나
벌레를 독차지할 수 있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강인함과 함께 앞을 내다보는
지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냉이는 영양분이 많고
맛이 좋아서 초봄의 먹거리로
환영받습니다,
하지만 이 이유만으로
사랑받는 것은 아닙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푸르름을 잃지 않는
냉이의 생명력이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고 믿는 이유도 있습니다.
춥고 어려운 시절을 겪은
나물이 그만큼 값지다는
이야기와도 통합니다.
◉냉이는 당장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주거환경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언제 경운기에 갈릴지 모르고
제초제가 뿌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발아 기간을 길게 잡아
봄뿐 아니라 여름 가을에도
싹을 틔웁니다.
땅 위에 드러난
냉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아낙네들이 봄나물로
아무리 캐 가도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계속해서 싹을 틔울 수 있는
예비군이 땅속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종자은행(Seed Bank)처럼
풍부한 땅속 씨앗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히 등장하는 냉이입니다.
진짜 실력을 땅속에 감춰두고
꾸준히 생존과 번식을
이어가는 봄나물입니다.
냉이라는 말 자체가
나물을 의미하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이 냉이를 비롯해
초봄의 나물을 캐러 나선
처녀들의 노래를 들어 봅니다.
1932년에 만들어진
현제명 작사 작곡의
가곡입니다.
봄나물보다는
나물 캐는 처녀에게 반한
소먹이는 총각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래입니다.
처녀에게 반한 총각의
설레는 마음을 통통튀는
반주로 나타냈습니다.
몇 년 전 화희오페라 음악회에서
독일 출신 소프라노
로미 패트릭(Romy Petrick)과
테너 김남두가 꾸민
듀엣 무대입니다.
https://youtu.be/1VyBeQVcfu4?si=P7B--45y7vycBPL1
◉현제명은 같은 해인
1932년 또 하나의 ‘봄’ 가곡을
내놓습니다.
이번에는 이은상의 시조에
자신이 곡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시조 가사로 만든
최초의 가곡입니다.
이은상이 시조에서 나타낸
‘봄 처녀’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계절
봄을 의미합니다.
그 봄이 만개한 희망을 안고
내 집 앞을 지나갈까?
나가서 봄처녀에게 한번
물어볼까?
◉일제 강점기에 나온
시조라 나라 잃은 백성에게
희망이 봄이 찾아올 수 있을까?
하는 숨은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냥 봄을 기다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들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새 풀잎 위에 진주 이슬을
가득 머금고 찾아오는
‘봄처녀’를 만나봅니다.
소프라노 신델라가
불러오는 ‘봄처녀’입니다.
https://youtu.be/FL4bVTl_HAI?si=F7aQOgTFAotrdCJ5
◉봄이 시작되면 듣게 되는
‘강 건너 봄이 오듯’은
역시 사설시조에 곡을 붙여
국민 가곡으로 자리잡은
노래입니다.
주부 시인 송길자의 사설시조
‘소식’에 작곡가 임긍수가
곡을 붙였습니다.
여주여고를 나와
평범한 주부로 살다 등단한
송길자 시인은 KBS로부터
가곡을 만들 시를 의뢰받고
자신의 시를 다듬어
‘강 건너 봄이 오듯’이란
제목으로 보냈습니다.
서울음대 작곡과 출신의
작곡가 임긍수는 작사가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가면서
후렴구까지 만들어 곡을
1990년도에 완성했습니다.
◉새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풍부한 감성으로
그려낸 느리게 흘러가는
잔잔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서울 국제 콩쿠르
지정곡으로 선정되기도 하고
자동차 광고에도 등장하면서
국민 가곡으로 자리 잡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조수미를 비롯한 여러
성악가가 이 가곡을
불렀습니다.
여기서는 2022년 11월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진
‘함께 부르는 가곡’ 무대에서
가져온 노래로 듣습니다.
김광현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춘 소프라노 임선혜의
무대입니다.
https://youtu.be/tzFBK9oDyPk
◉다가오는 봄이 자리를
잡는 데는 아직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본격적인 봄꽃 소식을
듣는 데도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제 겨우 잔설 속의
복수초를 만났을 뿐입니다.
그래도 봄을 향해가는
발걸음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릅니다.
다가오는 이 봄에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찬찬히 춘망(春望)을 짚어볼
때이기도 합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