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아침음악

2024.0517

해군52 2024. 5. 19. 08:15

✱아침을 여는 음악 5월 17일(금)✱ 
▲찔레꽃
◾슬픔의 꽃에서⇨ 
  웃음과 기쁨의 꽃으로 

              ◀찔레꽃① 
                 ◼이연실 
                 ◼김희진 
              ◀찔레꽃②
                 ◼장사익 
              ◀찔레꽃③(백난아)
                 ◼양지은 
              ◀찔레꽃 피는 산길 
                 ◼이영화(테너)

◉올해도 5월의 한가운데서 
찔레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흰 꽃의 계절 5월에 
가장 돋보이는 꽃 가운데 
하나가 찔레꽃입니다.
하얀 찔레꽃이 등장하면서 
창밖 뒷산 근처가 
한층 환해졌습니다. 
봄의 끝자락을 잡고 피는 
사연 많은 찔레꽃은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초대해 주는 
반가운 꽃입니다.

◉찔레꽃이 필 즈음은 
여러 색깔의 꽃들이
뒷산에서 함께 어울려  
친구 할 때입니다.
자주색의 아이리스와 수레국화, 
짙은 연분홍의 금낭화, 
삼색 병꽃나무꽃, 
노란색의 애기똥풀과 
미나리아재비, 
여러 색의 매 발톱 등이 
그들입니다.
이즈음에 피는 꽃들은 
찔레꽃과 아카시아꽃, 
고광나무꽃, 은방울꽃처럼 
흰색의 꽃들이 더욱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청초하고 아련한 
하얀 꽃의 모양이 주는 
느낌이 우선 그렇습니다.
게다가 흰 꽃들은 
달콤하고 은은하고 아련한 
향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색깔 있는 꽃들보다 
찔레꽃이 향기로 
더 뽐내는 것은 
꽃에 색을 입히는 
에너지를 아껴서 
좋은 향기를 만드는데 
투자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향긋한 향기를 지닌
고광나무꽃이 지는 때에 
향기의 릴레이를 이어받아 
등장하는 찔레꽃은 
그래서 더욱 반갑습니다.

◉찔레꽃 향기는 
화려한 꽃술에서 나옵니다.
다섯 장의 하얀 꽃잎이 열리면 
그 한가운데에 노란색의 
풍성한 꽃술이 나타납니다.
벌과 나비가 열심히 
드나드는 바로 그 꽃술입니다.
같은 때에 피는 아카시아도 
벌들을 불러 모을 만큼 
한 향기 합니다. 
하지만 결이 다른 찔레꽃의 
향기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향기가 은은하고 달콤해서 
여운이 깊게 남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장미과에 속하는 찔레꽃은 
한국 토종의 들장미입니다.
그래서 ‘Oriental Wild Rose’란 
이름으로 부릅니다.
찔레꽃이란 이름은 
가지에 예리한 가시가 있어
만지면 찔릴 수 있다는 데서 
얻은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름만 들으면 
성깔 있는 나무와 꽃의 
이름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야생 들장미’라는 이름보다
‘찔레꽃’이란 이름이 훨씬 더 
친근하고 정겹게 들립니다.
아마 오랜 세월 
서민들과 친해 온 
애환이 깃든 꽃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찔레나무의 가시는 
우선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합니다. 
게다가 망토를 펼친 것처럼 
주변을 보존해서 숲과
초원을 지켜내는 역할도 합니다. 
찔레나무와 같은 식물을 
‘망토 식물’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특유의 향기로 
곤충을 불러 모아 
먹여 살리는 지혜로운 
상생(相生)의 식물입니다.
숲속 주변 생명에게는 물론 
한때 사람에게도 중요한 
먹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냥 보통의 먹거리가 아니라 
슬픔과 애환이 담긴 
먹거리였습니다. 
사포닌이 들어있어 
쌉싸름한 가운데 
달콤한 맛이 나는 찔레순은 
간식거리가 됩니다. 
하얀 꽃잎 역시 
아이들의 먹거리가 됩니다. 
나이 든 어른들 가운데는 
찔레꽃을 따 먹던 
추억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아이도 
찔레순을 간식으로 먹거나 
찔레꽃잎을 따 먹지 않습니다.
그것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조차 
거의 없습니다.
배가 고프다고 
그것을 먹는 아이는 
더더욱 없습니다. 

◉5월 중하순은 과거 
보릿고개라고 불렀던 때입니다.
가난한 시절 보리 수확 전에 
쌀과 먹거리가 떨어지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그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습니다.
그 초근목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그 시기에 
꽃 피우는 찔레꽃과 
찔레순이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식량을 수탈해 가면서 
더욱 혹독한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태평양전쟁 때의 보릿고개는 
세상의 모든 고개 가운데 
가장 넘기 힘들고 어려운 
고개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보릿고개가 한창때 
찔레꽃이 피기 시작하면 
희한하게 때맞춰 
뻐꾸기가 구슬프게 웁니다.
1960년대가 지나면서 
보릿고개가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이맘때면 어김없이 
찔레꽃이 피고 
뻐꾸기가 밤낮 울어댑니다.
지금도 뻐꾸기 소리가 들립니다.
다만 같은 울음이지만 
보릿고개 때처럼 구슬프고 
처연하게 들리지는 않는 것은 
세월이 가면서 달라진
정서 때문일 것입니다. 

◉1930년도 아동문학가 이원수가 
‘신소년’에 발표한 동시 
‘찔레꽃’에는 애달프고 슬픈 
우리 정서가 담겨있습니다.
광산에 돌 깨는 일을 나간 
누나를 기다리는 배고픈 소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가만히 먹어 봤다오.
‘가만히’ 먹어봤다는 부사가 
마음을 더 아리게 만듭니다.
배고픈 것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먹을까? 말까?’하는 
소년의 망설임이 엿보입니다. 
돌 깨는 일을 나간 누나도 
배고픔을 참으며 
누나를 기다리는 소년도 
찔레꽃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슬프고 가슴 아픈 지난날입니다. 

◉‘찔레꽃’ 동시를 노래로 만들어 
널리 알린 가수가 이연실입니다. 
1971년 홍익대 미대를 중퇴하고 
가수로 데뷔한 이연실은 
이듬해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발표합니다.
이원수의 ‘찔레꽃’ 속의 누나를 
엄마로 개사해서 
작곡가 박태준의 곡에 붙인 노래가 
바로 이연실의 ‘찔레꽃’입니다.
맑으면서도 비음이 섞인 
목소리로 부른 이연실의 
‘찔레꽃’은 많은 사랑을 받고 
여러 가수가 커버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찔레꽃을 떠올리는 노래지만 
찔레꽃보다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노래로 이어져 왔습니다.
찔레꽃이나 엄마가 지닌 정서가 
크게 다르지 않아 받아들이는 
느낌은 비슷했습니다.
이연실의 ‘찔레꽃’입니다.
https://youtu.be/IfKBEi4YJTE?si=JR86DTo62XBB-lRm

◉올해 일흔네 살이 되는 
이연실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녀가 직접 부르는 
‘찔레꽃’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아들을 잃고 이혼한 뒤 
종적을 감춘 그녀가 
찔레꽃 정서를 닮은 슬픈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포크 가수 김희진의 커버로 
다시 한번 들어봅니다. 
https://youtu.be/K3HLFkYyVyw?si=sHZoGDi6cJbrGMYB

◉이연실이 가수 활동을 마감한 
1990년 중반 이연실보다 
한 살 많은 장사익은 
또 다른 ‘찔레꽃’으로 
슬픔과 한을 토해내며 등장합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슬픈 이유도 슬픈 사연도
 보이지 않는 그저 
슬프기만 한 노랫말입니다. 
그런데도 이 노래를 
슬픔과 한의 정서가 서린 
‘찔레꽃’으로 만들어 낸 건 
전적으로 장사익 특유의 
한 서린 창법 때문입니다.

◉장사익이 이 노래를 
마흔다섯 살 때인 1994년에
만들었습니다. 
가수로 데뷔하기 
한 해 전이었습니다. 
40대 중반까지 여러 직업에 
전전하며 고달픈 삶을 
살아왔던 장사익입니다. 
1994년 5월 어느 날 
좋은 향기가 나서 
장미 향기인 줄 알고 가 보니 
장미 뒤에 숨어있는 찔레꽃에서 
나는 향기였다고 합니다. 
그 찔레꽃이 다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 보여 
한바탕 목놓아 울고 난 뒤 
노래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듬해 친구인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권유로 데뷔 앨범 
‘하늘 가는 길’을 내면서 
한해 전에 만들었던 
‘찔레꽃’을 여기에 담았습니다.
이 노래는 이후 장사익의 
브랜드 송이 돼서 
가수도 노래도 유명해졌습니다.
일흔다섯 살인 장사익은 지금도 
특유의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릅니다.
국악 색깔이 짙은 그의 노래에서는 
소박하고 애처로운 찔레꽃의 
정서가 잔뜩 묻어납니다.
2년 전 ‘봄날’ 특집 무대입니다. 
https://youtu.be/tMyCMS5z0G4?si=jDI8s5Ds-KZL83Uq

◉‘KBS 가요무대’에서 
가장 많이 신청받는 노래가 
백난아의 ‘찔레꽃’이라고 합니다. 
1942년 일제강점기에 부른 
이 노래는 그만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트롯 가운데 
한 곡으로 손꼽힙니다.
이 노래 속의 찔레꽃은 
떠나온 고향을 상징합니다.
그 시절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만주로 시베리아로 
유랑을 떠난 선인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조국 독립을 위해 
독립군이 되기도 했습니다.
1940년대 초 북간도 위문공연에 
나섰던 김영일 김교성 콤비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독립군을 몰래 만나보고 돌아와 
만든 노래가 바로 ‘찔레꽃’입니다.

◉백난아가 부른 이 노래는 
해방 후에 더 많은 인기를 얻으며 
고향을 그리는 망향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첫 노랫말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여기에 등장하는 찔레꽃은 
붉은색입니다. 
찔레꽃은 간혹 연분홍색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흰 꽃입니다.
그래서 이 꽃은 해당화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해당화(Rosa Rugosa)도 찔레꽃도 
모두 장미과에 속하니 
넓게 해석해서 찔레꽃으로 
그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로 바닷가 모래밭 등에서 피는 
해당화는 꽃잎도 훨씬 크고 붉습니다.
하지만 색깔에 상관없이 
노래 속 찔레꽃은 
고향을 상징하는 꽃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제주 출신 백난아의 노래를
역시 제주 출신의 미스 트롯
양지은이 커버합니다. 
https://youtu.be/j_uyu4rTuaY?si=GTL9teNIa-PKTukH

◉찔레꽃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는 
왜 하나같이 슬프고 
한이 서려 있을까요? 
살아온 과거의 삶을 되짚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토종을 찔레꽃을 
슬픔과 한의 틀 속에 
묶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우선 5월 제철에 열심히 
순박한 하얀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로 주위에 
기쁨을 주는 찔레꽃이 
제일 억울할 것 같습니다. 
찔레꽃을 먹지도 않고 
일 나간 엄마 누나를 
기다리지도 않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앞의 찔레꽃 정서가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면 정서가 변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서를 그려내는 
방법도 달라지는 게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송문헌의 시에 
이수인이 곡을 붙인 가곡 
‘찔레꽃 피는 산길’에서 
그려낸 찔레꽃은 조금 다릅니다.
여전히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꽃인 것은 같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한과 슬픔의 꽃이 아니라 
마음을 설레게 하고 
빙그레 웃음 짓는 님의 꽃입니다, 
한국 가곡 작사가 협회 
회장을 지낸 송문헌 시인처럼 
찔레꽃을 밝고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노래들이 많아지면 
찔레꽃에 대한 정서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테너 이영화의 노래로 만나봅니다.
https://youtu.be/M4l4vlL5Mc8?si=fI7SM4XyrLR26eos

◉과거 배고플 때 먹던 찔레순은 
이제 인기 있는 나물이 됐습니다.
찔레꽃잎은 귀한 꽃차가 됐습니다. 
영실(營實)이라 불리는 열매는 
사람을 위한 약제가 됐습니다. 
이 열매는 새들에게는 
겨울을 나는 좋은 먹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찔레꽃은 이제 
슬퍼서 목 놓아 우는 꽃에서 
벗어날 때가 됐습니다.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는 
웃음의 꽃이 돼도 괜찮습니다. 
이름답고 순박한 꽃에 
향기마저 지녔으니 
그런 꽃이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웃음과 기쁨을 주는 
찔레꽃’을 그려내는 대중가요가 
나올 때가 됐습니다.
누가 그런 노래를 선보일지 
기다려 봅니다. 
평소 좋아하는 가수가 
그 노래를 부른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배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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