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

나홀로 신선놀음 (2008.0622)

해군52 2008. 6. 27. 22:16

 

일요일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친 후 관악산을 찾습니다

 

때로는 수십명 단체로 가는 떠들썩한 등산도 좋고

몇 명이 정담을 나누는 조촐한 등산도 좋지만

나홀로 가는 등산의 맛은 아주 색다릅니다

 

 

세상 살기가 힘들게 느껴질 때,

누군가가 견딜 수 없이 미워질 때,

혼자 산을 찾아 산의 넓은 품안에 안기면

어지간한 마음의 병은 씻은 듯이 치유됩니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배드민턴장을 조금 지나니

어느새 서울이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데

비로 닦아낸 서울하늘은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각기 다른 모양을 한 다리들이 걸쳐진 한강은 물론

 

 

북쪽으로 남산, 북한산, 도봉산

 

 

서북쪽으로 월드컵경기장과 하늘공원

 

 

서쪽으로 멀리 인천 송도 앞 바다

 

 

동쪽으로 과천경마장과 그 너머 청계산

 

 

동남쪽으로 의왕 백운호수가 보입니다

 

 

홀로 산길을 걸으며 나를 어루만지는 산의 손길을 느껴봅니다  

마음에 쌓여있던 사기邪氣가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평화가 자리합니다

 

 

숲사이 작은 공간을 찾아 자리를 펴고 앉습니다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고, 무거운 마음마저 벗어봅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캔을 마십니다

가져간 책을 꺼내 몇장 넘깁니다  

잠시 누워 하늘을 바라봅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왜 자꾸 잊어버릴까?'

 

정말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신선이 되고 보니 곳곳에 선녀들도 많이 보입니다^^

 

 

다시 배낭을 메고 산길을 걸어갑니다

 

배낭에 가지고 다니는 집게와 비닐봉지를 꺼내들고

눈에 띄는대로 쓰레기를 주워담습니다

담배꽁초, 휴지, 과일껍질, 깡통, 페트병, 유리조각, 술병마개...

 

쓰레기를 주워담으면서 늘 마음 속으로는 불평을 말합니다 

 

'어떤 인간이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고 다닐까?'

'누구는 쓰레기를 버리고 누구는 쓰레기를 줍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저 혼자 하면서도 불만입니다

 

하지만 그날만은 신선이 되고 보니 마음도 달라집니다

 

'이렇게 버린 사람들 덕분에 나도 착한 일을 하는 거지'

'언젠가 내가 버린 쓰레기를 누군가가 주웠을 텐데...'

 

 

많은 사람들이 겪은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아직도 멀었고

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인데 우리는 그걸 너무도 쉽게 잊어버립니다

 

 

잠시 신선놀음-仙遊-을 마치고 내려와 쓰레기봉지를 버리는데

'쓰레기 버린 사람을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다시 살아납니다  

 

어차피 신선은 잠시동안의 착각일뿐

선계仙界를 떠나 속계俗界로 돌아오는 그 순간

평소의 소인배로 돌아와 버리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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