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을 보는 길옥윤 눈은 점차 뜨거워지고…
① 길옥윤-패티김 ‘서울의 찬가’
“나는 일본 생활을 끝냈습니다. 이제 우리 서울에 살려고 왔습니다. 세계 어디로 가더라도 우리나라 서울만큼 살기 좋은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름다운 서울….” 그랬다. 길옥윤은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에서 살았다. 연주활동은 물론 작곡도 하면서…. 서울은 아름다운 곳, 살기 좋은 곳이다. 오랜 역사와 함께 문화가 녹아 있는 고대도시이면서 현대도시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푸른 향기가 감도는 남한산성이며 북한산성, 이끼 서린 옛 성터의 돌담길은 또 어떠한가. 남산을 바라보며 휘도는 한강의 경관은 절경 중의 절경. 누가 서울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1965년 길옥윤이 돌아오던 해. 미국에서 가수생활을 하던 패티김도 잠시 귀국한다. 당시 모친이 위독했기 때문. 두 사람, 패티김과 길옥윤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길옥윤 음악에 패티김 노래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감동도 이런 감동이 또 어디 있겠는가. 부르는 노래마다 국민 공감대를 얻었다. 사랑을 받았다. 환상의 콤비 탄생.
패티김을 보는 길옥윤의 시선은 점차 뜨거워진다. 가수의 가창력에 빠지게 되고, 모든 노래를 소화해내는 재능에 매료된다. 패티김 또한 길옥윤과 공연을 자주 하면서 색소폰 연주에 끌리게 되고…. 고등학교 시절, 창을 배워 고음에서 소리를 내지르면 이게 바로 패티김식 창법. 성량이 누구보다 풍부한 이 가수는 재즈, 칸초네, 라틴노래도 불렀지만, 세계적인 가수 패티 페이지의 노래를 듣고서는 패티김으로 이름을 바꾼다.
“‘한오백년’, ‘칠갑산’ 같은 노래는 부를 수 있겠지만, 트로트는 안돼요.” 그러나, 필자가 작사한 ‘가슴아프게’ ‘물레방아 도는데’를 잘 불렀다. 편곡을 달리하긴 했지만…. 이 시대의 최고 절창 가수와 인기 작곡가의 열애는 길옥윤의 구애로 시작된다. 4월이면 미국으로 다시 떠나야 할 연인에게 바치는 길옥윤의 러브송은 참으로 열정적이면서도 애절했다.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라. 날이 갈수록 깊이 정들고….” 얼마나 사모했으면 전화로 불러주는 길옥윤의 노래가 떨리고 흠뻑 젖었을까. 이런 노골적인 사랑 고백에 이들은 부부 연을 맺는다.
‘좋아해 좋아해 당신을 좋아해/저 하늘에 태양이 돌고 있는 한/당신을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당신을 좋아해/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한/당신을 좋아해/그대 없이는 못살아/나 혼자서 못살아/헤어져서는 못살아/떠나가면 못살아’
길옥윤 작사·작곡/패티김의 노래 ‘그대 없이는 못살아’는 이들 부부애가 절정에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연예인으로서 패티김은 오만하고 거만해 보여도 가정에서는 모범적인 현모양처. 길옥윤과는 정반대 성격이었다. 패티김이 계획을 세우면 그대로 실천하는 스타일인 데 비해, 길옥윤은 두주불사(斗酒不辭)형. 마셨다 하면 만취해 업혀서 들어오는 게 다반사였다. 1972년에 헤어지고 만 두 사람. 그러나 헤어지면서도 약속을 한다. 1년에 한 번씩은 앨범을 내자고….
노래시인 길옥윤의 사랑은 일편단심. 그는 죽으면서까지 연인 패티김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한때 일본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길옥윤은 1995년 이른 봄. 서울 길동 성모병원에서 타계한다. 짧은 생애. 하지만 그가 서울에 살면서 작사·작곡한 서울의 찬가는 빛났다. 그가 눈을 감은 그 해 가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공원에서는 ‘서울의 찬가’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1995년 오후 4시쯤이었다.
주인공은 안보였지만, 서울의 찬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졌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그리워라 내 사랑아/내 곁을 떠나지 마오/처음 만나서 사랑을 맺은/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아름다운 서울에서/서울에서 살으렵니다-//봄이 또 오고, 여름이 가고/낙엽은 지고, 눈보라 쳐도/변함없는 내 사랑아/내 곁을 떠나지 마오/헤어져 멀리 있다 하여도/내 품에 돌아오라, 그대여/아름다운 서울에서/서울에서 살으렵니다.’
길옥윤 선생을 떠나보내면서 정두수 삼가 올리는 글입니다.
‘길옥윤 선생님./저 밤하늘에 이제는 색소폰을 불지 마십시오./얼마나 힘들었습니까/타국살이…/일본 도쿄의 술집에서/생존을 위한 연주를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당신은 아름다운 사람, 색소폰 연주자 이전의 참 멋있는 노래 시인./‘서울의 찬가’와 ‘이별’은/지금도 우리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편히 쉬십시오, 길옥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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