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갈수록 간절한 戀慕 영혼의 울림으로 승화하다
④ 유영근·김수희 ‘애모’
‘만나면 괴로운 관계’와 ‘만나서는 안 될 사이’와의 차이는 엄연히 다르다. ‘애모’의 작사·작곡가 유영근과 이 노래의 주인공 H와의 관계도 그랬다. H는 이미 결혼해서 남의 여자가 된 사람…. 그러나 유영근은 당시 37세의 노총각(현재 숭실대 콘서바토리 주임교수·철학박사).
1989년 어느 가을 날. 유영근은 동해 바닷가의 외진 기슭을 헤맨다. 옛날 H와 자주 왔던 곳이기에….
이날도 바다는 가슴을 열고 그를 반기고 있었다.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은 서로 손을 잡고 유유히 흐르면서 ‘자유의 노래’를 구가했다.
“구속과 속박당한 건 나뿐이구나….”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그녀 때문. 진실로 사랑하기에 그리움은 절실하고 애틋한 사랑은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도 남아 있는 것. 그래서 넘치는가. 외로운 것인가.
“아, 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이뤄지지 않는 사랑은 고통이었다. H와의 운명적인 만남도 그랬다. 아무리 사랑에 다가서려고 해도 그건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는거나 같았다. 그래서 사랑은 잡을 수 없는 한줄기 바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끈끈하고 끈질긴 사랑에 대한 집착과 집념은 사랑을 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르리라.
사랑에 대한 의지는 강인하다. 강 넘어 불빛처럼 마음을 흔든다. 한사람에 대한 줄기찬 사랑은 그가 39세가 되도록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그랬던 것이다.
사랑은 정말 지울 수 없는 존재인가. 손에 잡힐 것 같은 저 구름도 띠를 두르고 가을 하늘로 동행하는데, 나는 왜 동행자도 동반자도 없는가. 나 혼자뿐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애모’에 대한 노래시가 떠올랐다.
참으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응어리진 한(恨)의 소리가 가슴을 열고 들려왔다.
그는 어지러운 심기를 몇 번을 정리했다. 감정을 절제하고 진실만을 표출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것만 가다듬었다. 그 자신의 감동 없이 어찌 남을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노래는 열정만 갖고 안 된다. 모름지기 사랑의 혼으로 창작돼야 하는 것이다. 유영근의 H에 대한 간절한 연모가 바로 그랬던 것.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요”
그랬다. 가슴에 흔적이 있는 한,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김수희. 그녀는 시대를 읽으면서 한 발짝 앞서서 나가는 가수, 시대를 관통하는 가수다. 사람을 움직이는 노래가 국민정서일진대, 가수의 가창력과 호소력은 음악 장르를 뛰어넘어 그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영혼의 울림 같은 것. 판소리가 그렇지 않은가.
가슴의 떨림 같은 흐느끼는 듯한 김수희의 목소리. ‘너무합니다’ ‘못잊겠어요’ ‘남행열차’ ‘멍에’등 그녀의 히트 노래 중에 어느 것 하나 혼이 담겨져 있지 않은 게 없었다. 절창이기에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서정성을 바탕에 깔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이 노래 ‘애모’….
정말 이 시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회가 삭막할수록 외로운 사람들은 노래의 정서에 빠진다. 그것도 그 자신의 사연 같은 노래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노래 작가를 김수희는 방송 인터뷰에서 부산 출신 노총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방송을 유심히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H, 그녀였다. ‘애모’의 노래가 한창 뜨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길에서 부딪친 유영근과 H. 뜨거운 찻잔을 사이에 두고,
“이 노래, 우리 이야기이지요….”
H의 이 말에 유영근은 멋쩍게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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