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겁고 맛이 없다는 말을 들어온 한국 맥주가 국회에 서게 됐다. 중소 맥주 회사를 육성해 오비와 하이트진로의 맥주 시장 과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법안이 곧 국회에 제출된다. 법안에 대형 제조사들이 반대하고 있어 '맥주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맥주 과점 막겠다는 법안 발의
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은 맥주 제조 시설의 법정 최소 규모를 축소하고 중소 맥주업체에 대한 주세율을 낮추는 주세법 개정안을 이번 주 발의할 계획이라고 14일 밝혔다.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등 대형 맥주 제조사들은 "정부가 중소 맥주 업체에 세금을 깎아줄 경우 소규모 업체가 난립해 맥주의 유통기간이 길어지고, 덤핑 맥주가 늘어 시장질서를 교란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 맥주 시장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95% 이상 점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외국산 맥주다. 2011년 국내 첫 중소 맥주 업체인 세븐브로이가, 1933년 동양맥주(오비맥주 전신)와 조선맥주(하이트진로 전신) 이후 78년 만에 면허를 받아 대형마트에 캔맥주를 공급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0.5%에도 못 미친다. 이보다 작은 소규모 맥주 제조자(마이크로 브루어리)도 30여곳 있지만 생맥주 형태로 자기 식당 손님에게 판매할 뿐 캔이나 병으로 대형마트나 일반 음식점에서 공급할 수는 없다.
홍 의원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紙)가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보도할 정도로 한국 맥주의 경쟁력이 낮은 것은 현재 맥주 과점 체제에 원인이 있다"며 "중소 맥주 업체를 육성해 경쟁력을 강화할 시점"이라고 했다.
◇"소규모 회사에 주세율 인하"
현재 맥주에 부과되는 72% 세율을 제조 시설 규모에 따라 차등해 중소업체는 세율을 30%까지 낮추자는 게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현행 주세법은 맥주 출고 금액에 세율을 곱하는 종가(從價)세다. 반면 독일 등은 맥주 제조 규모에 따라 56~84%까지 할인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차보윤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장은 "현행 세율에서는 생산량이 많은 대형 맥주 회사가 고정비 분산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며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맥주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생산량에 따른 세율 차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맥주 회사 설립에 걸림돌이 돼온 시설 기준 완화도 추진된다. 개정안에는 현재 전(前)발효조 5만L 이상, 후(後)발효조 10만L 이상인 맥주 제조업 시설 기준을 각각 절반씩으로 낮추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맥주는 전발효조에서 맥아와 홉에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 뒤 후발효조에 옮겨 담아 숙성시킨다.
대형 맥주 회사들은 부실 업체 난립을 우려하고 있다. 맥주가 생산 시설에 돈이 많이 드는 '장치산업'인데, 소규모 시설로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도 300개가 넘는 중소형 맥주 회사가 있지만 맥주 시장점유율이 1%도 안 된다. 서정록 한국주류산업협회 이사는 "중소 업체의 제품 판매가 부진할 경우 유통기간이 길어진 제품이 염가로 나오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맥아 늘리면 맛있다는 것은 오해"
개정안에는 맥주의 재료인 맥아(맥주보리의 싹을 말린 것)를 현재 10% 이상에서 70% 이상으로 올리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맥아 비율을 올리면 주조 비용이 올라간다. 홍 의원 측은 맥주 풍미가 좋아질 것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카스'나 '하이트'는 맥아 비율이 70% 이상이라는 게 업체 주장이다. 'OB골든라거', '맥스'처럼 맥아 100%로 만든 맥주도 있다.
홍 의원은 "맥아 100%가 아닌 맥주는 제조 비밀이라는 이유로 맥아 비율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맥아 비율을 70% 이상으로 법제화함으로써 맥주 회사로 하여금 맥아를 더 쓰고 맛을 개선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맥주회사 관계자는 "맥아를 더 쓰면 원료비가 늘어나긴 하지만 맥아량을 늘리면 풍미가 좋아진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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