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00

나는 영국 왕을 섬겼다 (2006)

해군52 2021. 4. 3. 23:42

Obsluhoval jsem anglického krále 2006년/체코/120분

감독 Jiri Menzel

출연 Julia Jentsch, Ivan Barnev, Oldrich Kaiser

 

체코가 나치에 점령당했던 1930년대 후반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어느 가난한 시골 웨이터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따뜻한 웃음과 역설적 풍자 가득하게 그린 블랙코미디로

체코 문학의 정신적 지주 보흐밀 흐라발의 원작 소설을

이리 멘젤 감독이 고풍스러운 영상에 옮겨놓은 수작이다

 

제목이 영국의 사극을 연상하게 하지만 이 말은 주인공이

근무하던 호텔의 고참 웨이터가 자신의 경력을 자랑할 때

즐겨 쓰는 표현일 뿐이고 영국 관련한 내용은 전혀 없다

소설의 국내 번역본 제목은 <나는 영국왕을 모셨지>인데

‘섬겼다’보다는 ‘모셨다’는 번역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흐라발(1914~1997)은 프라하의 봄이라 불린 1968년부터

20여년간 체코에서 출간 금지를 당하면서도 고국에 남아

있어서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체코에서 삼백만 부나 팔렸고, 세계 27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여덟 편의 작품이 영화화되었다

 

“나의 행운은 불행으로 이어졌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주인공의 인생 여정은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체코라는 나라의 격랑에 휘말려 행운과 불행이 교차한다

이야기는 밝고 유쾌하게 진행되지만 가진 자들의 추태와

물질을 좇다가 파멸하는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15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이제 노인이 된

디테(올드리치 카이저 분)가 육중한 감옥 문을 나선다

국경 근처 거의 무너져버린 술집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디테는 지나간 시절을 회상한다

 

왜소한 체격으로 시골 기차역에서 소시지를 파는 소년

디테(이반 바르네 분)는 돈을 벌기 위해서 뛰어다닌다

 

시골 식당의 웨이터로 일하며 부자들을 자주 본 디테는

백만장자로 호텔의 주인이 되기를 인생의 목표로 정한다

디테는 종종 손에 가득 쥔 동전을 길바닥에 뿌려놓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숨어서 몰래 훔쳐 본다

 

직장에서 나쁜 일이 생겨서 그만두면 운 좋게도 더 좋은

직장을 갖게 되고 여자를 유혹하는 솜씨도 점점 좋아진다

큰 호텔 웨이터로 들어간 디테는 ‘영국 왕을 모셨다’고

자랑하는 고참 웨이터를 만나 여러가지 도움을 받는다

 

이 고참 웨이터가 동양인 손님에게 주문받을 때 한국말을

해서 놀랐는데 디테는 중국말도 할 줄 아냐고 물어본다^^

 

이디오피아 황제가 주최한 파티에서 시중을 든 디테는

특별히 잘 한 것도 없으면서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키가 작은 황제로부터 훈장을 받는 행운을 잡기도 한다

 

초호화판 식사를 마치고 떠나는 권력층 장군을 환송할 때

우연히 가장 가까이 서 있다가 엄청난 팁을 받기도 한다

 

거리에서 곤경에 빠진 독일 처녀 리자(줄리아 옌체 분)를

구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와 급속하게 가까워진다

철저한 히틀러 신봉자인 독일인 리자와 사귀는 디테는

마을에서 배척당하고, 일하던 호텔을 떠나기도 하지만

아리안의 핏줄임을 증명하면서까지 리자와 결혼을 한다

 

리자는 신혼 침대에서도 히틀러의 사진만 바라본다

그녀의 도움으로 나치 군인들의 휴양소에 종업원으로

들어간 디테는 고통받는 체코인 때문에 고민하기도 한다

 

한편 전장으로 나갔던 리자는 유태인에게서 뺏은 희귀

우표책을 가지고 돌아오지만 집에 불이 나자 우표책을

건지러 들어갔다가 죽고, 우표책은 디테의 소유가 된다

디테는 희귀 우표 몇 장을 팔아서 큰 호텔을 인수한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돈을 벌어 꿈꾸던대로

부자가 된 디테는 벽을 지폐로 도배할 정도가 되지만

나치가 패하여 물러가고 체코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15년간의 감옥살이에 들어간다

디테는 과연 이런 굴곡진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리 멘젤 Jiri Menzel (1938~2020) 체코 배우이자 감독

 

감독 데뷔작인 <가까이서 본 기차>(2007)로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28살에 세계적 감독 반열에 올랐다

다음 연출작 <줄 위의 종달새>(2007)가 체코 정부로부터

상영금지처분을 받게 되자 많은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다

 

체코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자 체코 문학계의 정신적 지주인

보흐밀 흐라발과 함께 공산주의 체제 하의 고국에 머물며

나이를 뛰어넘는 신뢰와 교감을 나누면서 깊이 교류하였고

흐라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명품 영화들을 만들었다

 

가까이서 본 기차 (1966)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줄 위의 종달새 (1969) 베를린 금곰상

황금을 찾는 사람 (1975) 베를린 금곰상 후보

짧게 찌르기 (1981) 베니스 금사자상 후보

거지의 오페라 (1991) 바츨라프 하벨 원작

병사 이반 촌킨의 모험 (1994) 베니스 금사자상 후보

 

“진정한 웃음은 단순한 지식보다 의미가 있다

풍자를 통해 아이러니한 현실을 드러낼 수도 있고

웃음은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웃으면 더 잘 숨을 쉴 수 있고, 호흡하기도 편하다

웃음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고 본다“

 

이반 바르네브 Ivan Barnev (1973~ ) 불가리아 배우

올드리치 카이저 Oldrich Kaiser (1955~ ) 체코 배우

 

기차역의 장사꾼에서 백만장자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며

밑바닥에서 최고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다 겪어본 남자,

키 작은 남자를 뜻하는 디테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불가리아와 체코 출신의 두 배우가 나누어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