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 오후 한예종에서 희귀고전영화 두 편을 봤다. 다른 영화를 통해 감독과 주연배우는 알았지만 겨우 제목만 알았던 영화 두 편 모두 대단한 걸작이었다. 올드시네 모임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볼 수 없었을 희귀작품이다.
1. <바그다드 카페>(1987)의 퍼시 애들런 감독 데뷔작인 <쥬커 베이비>(1985)
<바그다드 카페>의 투톱 주연 중 한 명인 마리안 제게브레히트(이 배우는 이름보다는 몸매로 기억한다^^)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염하는 특이한 직업에 사교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뚱뚱한 몸매를 가진 외로운 노처녀는 어느 날 우연히 본 잘 생긴 지하철 기관사에 필이 꽂혀 스토커 수준으로 그에게 접근한다. 잘난 부인에 눌려 기를 못 피고 살던 청년 기관사는 연상 여인의 강력한 유혹에 넘어가버린다. 눌려만 살았던 커플은 고삐 풀린 듯 달려가는데...
그들의 사연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외로움이 묻어나다 못 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았다. 뒷골목 싸구려 술집의 불빛을 연상케 하는 화면의 색감이 이런 느낌을 더하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이 영화가 너무 슬펐다고 했더니 어떤 여성 회원은 너무 웃겼다고 했다. 모임의 시샵은 두 의견에 모두 동의한다고 해서 황희 정승 같은 판정인가 했더니, 영화 상영회 공지 내용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영화'라고 시샵이 이미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니 역시 고수!
2. 미국에서 매카시 선풍에 밀려 유럽으로 건너간 줄스 다신 감독이 터키의 지배를 받는 그리스 섬마을을 배경으로 만든 <숙명>(1957, 다른 제목-<죽어야 하는 남자>)
안소니 퀸이 주연을 맡았던 <희랍인 조르바>(1964)의 원작 소설 작가 카잔차키스의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다’를 영화화했다. 다신 감독의 실력만큼이나 영화의 짜임새는 훌륭했지만 종교와 정치색이 너무 진했다. 혼란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선과 악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데다 다신 감독이 신봉하는 이념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서 몰입하기 어려웠다.
입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주연을 맡지 못 했던 멜리나 메르쿠리가 특별한 직업녀로 출연했다. 이후 그녀는 다신 감독이 연출한 <일요일은 참으세요>(1960)와 <페드라>(1962)로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지만 배우보다는 그리스 독재정권과 투쟁 등으로 영화 외의 분야에서 더 크게 활동했다. 오래 전에 고인이 된 두 사람은 부부로 해로하면서 영화뿐만 아니라 이념적인 동지로 대단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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