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 근정전의 서북쪽 연못 안에 있는 경회루(慶會樓)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조선 태조 때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작은 누각으로 세워졌던 경회루는 태종 때 크게 확장되었다가 성종 때 고쳐지으면서 누각의 돌기둥에 화려한 용 문양까지 조각했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아 있다가 270여 년 후 고종 때 다시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 기둥을 세웠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2층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의 높이를 3단으로 각각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5칸의 2층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했다.
경회루는 우리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 누각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유산이다.
(이상 국가유산청 자료에서 발췌, 수정)

경회루는 왕실의 잔치나 왕이 신하들에게 베푸는 연회, 또는 .외국의 사신을 환영하는 연회 이외에도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거나, 활쏘기 대회, 무과 시험 등을 치르는 장소로도 쓰였다.
조선의 대표적인 폭군인 연산군이 경회루 주변을 화려하게 꾸미고, 흥청(興淸) 등 기생을 불러 배를 띄우고 유흥을 즐겼다고 해서 '흥청망청(興淸亡淸)'이라는 말이 유래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총탄을 맞은 흔적이 돌기등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1985년 국보 제224호로 지정되었고, 오랫동안 만원권 지폐의 뒷면 도안으로 사용되어 우리에게 친숙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경회루에서 보면 연못 너머로 북악산, 인왕산, 남산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하는데 간혹 사전예약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내부를 공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