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눈물에 흠뻑 젖은 한 청년… 60년대 덕수궁길 아픈 추억 읊어
⑧ 진송남 ‘덕수궁 돌담길’
1961년 어느 봄날. 그날은 진종일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당시 서대문에 살았던 나는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직장이 남대문로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인가. ‘덕수궁 돌담길’을 나는 하루에 꼭 두 번씩은 걸어 다녀야만 했다. 출근길에 한 번, 퇴근길에 또다시 한 번. 그때 덕수궁 돌담길은 우마차(牛馬車)도 안 다니던 한적한 산책로. 주말이면 젊은 연인들의 아베크 코스이기도 했다.
이 호젓한 거리를 걸으면서 그들은 청운(靑雲)의 꿈을 키웠고 학창시절을 즐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 거리를 걸었던 연인들은 대부분 사랑에 실패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통설(通說)이 있었다. 대학을 나오면, 남학생은 군대에 가고 여자 대학생은 시집을 가야 할 결혼 적령기에 이르는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지 마라! 징크스가 있다. ‘마(魔)의 코스’ 덕수궁 돌담길을…….”
그러나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덕수궁 돌담길은 도심지의 데이트 거리가 아니던가. 그래서 자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 어느 날. 그날은 진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출판 기념회에 들른 나는 약간 취기에 젖어 집으로 가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다. 그런데, 정동 골목길에서 나는 처절하게 돌담 벽에 기대어 몸부림치는 청년을 발견했다. 제대복을 입은 채, 그 청년은 술에 취해 울고 있는 것이었다. 빗물에 눈물에 흠뻑 젖은 채. 나는 집에 와서도 그 청년의 일로 번뇌했다.
“필시 그 청년에게는 사연이 있을 게다. 혹시…덕수궁 돌담길…?”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노래시를 썼다. 노래로서 덕수궁 돌담길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비 내리는 덕수궁 돌담길을/ 우산 없이 혼자서 거니는 사람/ 무슨 사연 있기에 혼자 거닐까/ 저토록 비를 맞고 혼자 거닐까/ 밤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밤에. 밤도 깊은 덕수궁 돌담장 길을/ 비를 맞고 말없이 거니는 사람/ 옛날에는 두 사람 거닐던 길을/ 지금은 어이해서 혼자 거닐까/ 밤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밤에”
나는 이 노래시를 노트에 써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을까. 고등학교 동창이던 양병철군이 어느 날 집으로 찾아왔다. 당시 그는 부산 MBC 문화방송국 전속가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가사 한 편 줘. 너무 서정적인 방송가요 노래시보다는 대중성이 있는 것으로….”
그는 내 노트에 적힌 시를 읽던 중에,
“이거 좋겠군. 덕수궁 돌담길이라….”
하지만 이 노래를 정작 부른 가수는 양병철이 아니라 진송남이었다. 1965년. 정두수 작사, 한산도 작곡, 진송남 노래의 ‘덕수궁 돌담길’은 그해 방송사로부터 품위 있고 격조 높은 서정가요로 선정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제1회 부산 국제 신보사 제정 작사상’을 비롯해 ‘문화공보부와 전국 예술인 총연합회 제정 작사상’을 수상했다.
이 노래의 작곡가 한산도씨는 ‘동백 아가씨’ ‘추억의 소야곡’ ‘해운대 엘레지’ ‘여자의 일생’ ‘동숙의 노래’ 등 그 당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사·작곡가. 가수 진송남은 나의 초등학교 후배이다.
“솔바람 소리에 잠이 깨이면/ 어머님 손을 잡고 따라 나선 시오릿길/ 학교 가는 솔밭 길은 멀고 험하여도/ 투정 없이 다니던 꿈같은 세월이며/ 어린 나의 졸업식 날 홀어머니는/ 내 손목을 부여잡고 슬피 우셨소/ 산새들 소리에 날이 밝으면/ 어머님 손을 잡고 따라 나선 시오릿길”
1973년. 진송남이 부른 정두수 작사, 김준규 작곡의 ‘시오리 솔밭길’. 이 노래의 주인공은 화전민의 무남독녀.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시오리 학교에 다녔지만, 이제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의 여교사가 됐다. 그런데 어머님이 안 보이신다. 한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어찌 어머님이 살아 계시겠는가. 작곡가 김준규, 그는 본디 가수였다. 하지만 노래를 접고 작곡에만 전념했다. ‘그대여 변치마오’ ‘이슬비’ 등의 히트를 내면서 정감적인 곡을 많이 썼다.
가수 진송남은 1963년 부산문화방송국의 전속가수. 그는 영화주제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시작으로 ‘덕수궁 돌담길’ ‘오! 임아’ ‘바보처럼 울었다’ ‘잘 있거라 공항이여’를 부른다.
덕수궁 돌담길. 지금은 어느 누가 봄비를 맞으며 거닐고 있을까…….
그러나 가수 남진, 태원 등과 함께 베트남 전선으로 가면서 공백기 3년을 남긴다. 제대 이후 불렀던 ‘시오리 솔밭길’. 이 노래의 노래비는 경남 하동군 고전면 주성리에 있는 <정두수 노래비 공원>에 세워져 있다. 나훈아가 부른 ‘물레방아 도는데’의 노래비와 함께…….
2009년 어느 가을날. 땅거미가 지는 노래비 공원에서 진송남은 시오리 솔밭길의 노래비를 끌어안으면서, “가수 생활 반세기에 ‘시오리 솔밭길’은 노래비가 세워졌지만, 내 사랑 ‘덕수궁 돌담길’은 언제 세워질꼬……?” 그는 씁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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