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13/문화일보)

해군52 2012. 6. 27. 11:16

‘통영 여고생’과의 애틋한 추억, 세월이 흘러도 사무치는 그리움…

(13) 박춘석·이미자의 ‘삼백리 한려수도’

 

‘삼백리 한려수도’는 한산섬에서 여수항에 이르는 청정해역 삼백리 바닷길을 말한다. 섬과 섬 사이로 흐르는 남빛 고운 바다는 마치 호수와도 같이 잔잔하다. 그러나 이 뱃길은 충무공의 거북선이 다니던 바다가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역사의 푸른 향기가 휘돈다. 구국(救國)의 혼령들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한산대첩’과 ‘노량대첩’은 이 바다 한려수도에서 임진전쟁 때 승전고를 울렸던 곳.

 

이 때문에 유적지는 경승지와 함께 풍광에 빛나고 있다. 봄날이면 동백꽃은 새빨갛게 핀다. ‘호국의 넋’인 양 핏빛 그리움으로 거울처럼 맑은 이 바다를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나폴리’라고 일컫는 충무항(통영)의 동백꽃은 유난히 붉다.

 

내 고향은 경남 하동.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방학 때면 한려수도 뱃길을 따라 고향으로 내려가곤 했다. 육로보다 수로가 발달했던 시대. 나는 배를 타고 많이 다녔다. 편리하기도 했지만 한려수도 경관이 좋았던 것. 풍광명미(風光明媚)는 한려수도를 두고 말함인가. 크고 작은 섬들이 촘촘히 박혀있고, 바닷물 속이 보일 만큼 맑았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통영(충무)에 접어들면 정말 아늑한 남쪽 항구와 만난다. 동백꽃 피는 통영항구. 허허바다 가덕도 앞바다는 거칠지만 거제도가 병풍처럼 에워싼 통영바다는 바다라기보다는 아름다운 호수 같은 곳이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배가 닿기 때문인가. 그 유명한 ‘충무김밥’을 사려고 선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선상으로 몰려나온다. 현지에서 따뜻한 김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어느 봄날. 나는 방학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된다. 여인은 김밥을 사려고 선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교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여고생이었다.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있겠는가?’ 맑고 큰 눈에 오뚝한 코, 수려한 용모는 우아하고 빛났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황홀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배가 언제 삼천포 항구에 도착한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넋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정신을 차렸다. 이번에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디서 내리겠는가…’ 하는 조바심 말이다.

 

이제 고향 금오산(일명 소오산)이 저만치 보인다. 나도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한 그녀와 헤어지기는 싫었다. ‘하동 노량에 함께 갔으면….’ 나는 눈을 감았다. 간절한 기도로 내 소망을 빌었다. 그러나 그녀는 선실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여수로 가는 것이었다. 멀어져 가는 배를 바라보는 내 가슴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동백꽃 피는 통영항에서 처음 보았던 그녀는 동백꽃 피는 남쪽 항구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저녁노을이 왜 바다에 가라앉지 못하고 붉게 타는지를 알 것 같았다.

 

‘노을 진 한산 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굽이굽이 바닷길에 배가 오는데/ 임 마중 섬 색시의 풋 가슴 속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 꽃처럼 타오르네/ 바닷가에 타오른다네. 달 밝은 한산 섬에 기러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거울 같구나/ 굽이굽이 바닷길에 밤은 깊은데/ 섬 색시 풋 가슴에 피는 사랑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 꽃처럼 피어나네/ 바위틈에 피어난다네.’

 

그렇게 서운할 수 없었던 그날의 무심한 연락선과 이별의 여수 바다에 붉게 타오르던 저녁노을을 떠올리면서 쓴 ‘삼백리 한려수도’ 노래시이다. 1972년에 발표했지만 사실은 고등학교 시절에 써놓은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책장을 펼쳐도 어른대던 그녀를 떠올리며 의인화해 한려수도의 바닷자락에 살아가는 ‘섬 색시’에 비유한 것이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그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았던 그리운 여인에 대한 연가(戀歌)는 두고두고 내 노래가 된다. 아쉽고 허전할 때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을 때 샘물처럼 솟아나는 그리움이 돼 내 노래는 남해 바다 한려수도에 넘실댄다.

 

‘남해바다 잔잔한 저 바다 위로/ 뱃고동을 울리면서 섬을 감돌아/ 오늘도 부산 배는 몇 번을 갔나. 다도해 사연 싣고 몇 번을 갔나/ 남해 섬 아가씨는 한(恨)이 맺히네. 남해 바다 꿈 같은 저 바다 위로/ 날 버리고 떠나간 무심한 배야/ 깨어진 그 기약은 몇 번이 되나/ 부서진 그 맹세는 몇 번이 되나/ 남해 섬 아가씨는 눈물 맺히네.’

 

이 노래, ‘남해섬 아가씨’는 정두수 작사, 서영은 작곡. 최숙자가 불러 크게 히트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편곡이 비탄조라고 해서 한때 금지곡이 된다.

 

1960년대는 가수 최숙자의 전성시대, ‘그러긴가요’ ‘개나리 처녀’ ‘눈물의 연평도’에 이어 크게 히트할 것을 기대했는데 정말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