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11/문화일보)

해군52 2012. 6. 13. 11:13

1·4후퇴… 피란민 넘친 부산… 시대 아픔 담은 ‘피맺힌 노래’

(11) 강사랑-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이 끔찍한 참상을 나는 눈을 뜨고서는 볼 수 없었다고 노래로 전하리라.”

 

1953년 어느 여름날. 작사가 강사랑 씨는 1·4 후퇴 당시 기록영화 ‘흥남부두 철수상황’을 보면서 격분한 나머지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압록강 부근에까지 진격하던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엄동설한의 추위와 또 보급로가 너무 길었기에 장진전투에서 후퇴한 것이다.

 

국군과 유엔군들은 흥남부두에 대기 중이던 미해병대 L·S·J에 오르고 있었다. 무려 10만 명이나 넘는 우리 피란민 또한 이 배를 얻어 타려고 흥남부두에 구름떼같이 몰려들었다.

 

쌩쌩-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피란 봇짐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짊어진 피란민들은 가족과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눈보라 속에서 그만 손을 놓치고 만다. 밀리고 밀리는 피란민의 행렬. 누가 이 인파를 막을 수 있겠는가.

 

아비규환. 그야말로 흥남부두 철수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헤어진 가족들을 찾는 처절한 목소리는 피맺힌 절규였던 것. 하지만 이 절규 역시 이내 눈보라 속에 파묻혀 버린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 보았다 찾아를 보았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 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홀로 왔다’

 

이 노래에 응축된 ‘굳세어라 금순아’는 당시 피란민의 주제가였다. 임시수도 부산은 자유를 찾아 몰려든 피란민들로 넘쳐났다. 영도다리 부근과 용두산, 그리고 보수동 일대는 따닥따닥 붙은 판자촌이 됐다. 광복동과 남포동 거리, 또 영도다리는 헤어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이산가족과 실향민이 헤매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찾는다. 그때 약속한 영도다리로 나오라, 기다리고 있겠다’라는 벽보가 즐비하게 나붙었다. 영도다리는 헤어질 것을 대비해서 미리 기약한 곳. 그러니까 영도다리는 만남의 장소였다. 밤이 늦도록 사람들로 붐볐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이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데/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1절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의 철수상황을 그렸다면, 2절은 부산 피란생활의 참담한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살고 있다는 건 바로 금순이 너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굳세게 살아다오 금순아!

 

전쟁이 만들어 낸 전쟁가요 ‘굳세어라 금순아’는 실향민의 주제가로서 이산가족을 찾는 피란민의 노래로서 부산항 하늘에 울려 퍼졌다. 아니, 핏빛 노래 바람으로 뒤덮은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현실이기에 너도 나도 목청껏 불렀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살아만 다오/ 북진통일 그 날이 되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 보자’

 

이 노래의 작사가 강사랑 씨는 언론인 출신으로 마당발이었다. 가요계와 레코드계에도 친한 사람이 많았다. 작곡가 박시춘 씨와도 절친해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노래시를 쓰게 된다. ‘감격시대’ ‘서귀포 사랑’ ‘아리랑 목동’ ‘뒤져본 사진첩’ ‘사랑찾아 칠백리’ 등이 있다. 가수 현인은 부산 영도 출신으로 이 노래 무대가 바로 그의 고향이었다.

 

‘초록바다 물결위에 황혼이 오면/ 사랑에 지고 새는 서귀포라 슬픔인가/ 임떠난 부두에 울며불며 새울 때/ 칠십리 밤 하늘에 푸른 별도 슬피 운다 그리워도 보고파도 아득한 바다/ 물새도 울며새는 서귀포라 눈물인가/ 동백꽃 향기에 휘감기는 옛 추억/ 칠십리 해안선에 서리서리 서린다.’

 

1958년에 발표된 강사랑 작사, 나화랑 작곡에 송민도가 부른 ‘서귀포 사랑’이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이제 영도다리 위에 노래비가 세워져 그 시절 참담함을 말해주고 있다. 작사가 강사랑, 작곡가 박시춘, 가수 현인. 세 사람 모두 타계하고 말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