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14/문화일보)

해군52 2012. 7. 4. 11:19

내리는 선창머리·뱃고동 소리… 노래 마디마디 애절함이 ‘절절히’

(14) 조명암·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

 

‘목포’하면 떠오르는 명소가 있다. 유달산, 영산강, 삼학도가 그렇다. 목포의 자랑이기 때문. 그래서 목포의 노래에는 이 명소들이 자주 등장한다. 1942년. 이난영이 부른 조명암 작사·이봉룡 작곡의 ‘목포는 항구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 유달산 잔디위에 놀던 옛날도/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목포는 항구다 이별의 부두.’

 

목포는 한반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항구이기 때문인가. 다도해의 절경과 함께 풍광이 빛난다.

 

1942년 어느 봄날. 작사가 조명암은 OK레코드사의 이철 사장으로부터 목포 노래시를 청탁받는다. ‘목포의 눈물’이 민족가요로 승화되자 목포 출신 이난영으로 하여금 또 한번 목포의 노래를 부르게 할 야심찬 기획이었던 것이다.

 

목포에 내려온 조명암은 곧바로 유달산을 찾았다. 목포의 정경이 한눈에 펼쳐지고 있었다. 역시 소문대로 목포는 아름다웠다. 목포를 둘러본 다음, 그는 부두로 향했다. 바다에는 봄 안개가 자욱했다. 비 오는 선창머리…. 똑딱선 기적소리는 여기저기서 울고 있지를 않는가. 조명암의 수첩에는 노래시가 담긴다. 목포를 또 한 차례 가요도시로 빛나게 하는 노래였다.

 

‘여수로 떠나갈까 제주로 갈까/비오는 선창머리 돛대를 잡고/이별 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

 

나중에 3절이 되지만 이 노래시를 먼저 쓴다. 봄비가 내리는 선창머리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그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기 때문. 작사가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받을 때, 창작 작품이 이뤄지는 것. ‘목포의 눈물’과 함께 ‘목포는 항구다’는 또 한차례 목포를 노래의 고향으로 부각시킨다.

 

당대 최고의 작사가 조명암은 시와 희곡도 썼지만 참으로 많은 명가요 노래시를 썼다. ‘낙화유수’ ‘꼬집힌 풋사랑’ ‘울며 헤진 부산항’ ’잘 있거라 단발령’ ‘화류춘몽’ ‘총각 진정서’ ‘역마차’‘눈 오는 네온가’ ‘서귀포 칠십리’ 등….

 

작곡가 이봉룡은 목포 출신으로 가수 이난영의 친오빠다. ‘낙화유수’ ‘고향설’ ‘정든 땅 포구의 인사’ ‘아주까리 등불’ 등을 작곡했다.

 

이난영의 본명은 이옥례. 토월회 단장 박승희가 픽업했다. 목포공연 때 이난영이 가수가 되기 위해서 찾아 왔었다. 소녀이지만 노래를 아주 잘했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두텁던 OK레코드사의 이철 사장에게 소개를 한 것이다.

 

그녀는 훗날 ‘목포의 눈물’ ‘울어라 문풍지’ ‘목포는 항구다’ ‘해조곡’ ‘다방의 푸른 꿈’ 등 주옥같은 명가요를 남겼다.

 

‘육지로 천리길을 누굴 찾아 왔던가/뱃길로 천리 바다 누굴 믿고 왔던가/종착역 앞에 두고 파도는 철썩이고/기적도 울다 멎고 뱃고동도 잠이 든/서글픈 종착역 서글픈 종착역.’

 

1966년 이른 봄날. 가수 남진을 위해 쓴 필자의 노래시 ‘서글픈 종착역’의 1절이다. 물론 목포를 떠올리면서 썼다. 작곡은 박춘석. 노래는 남진이 불렀다. 그로부터 4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2012년 초여름 어느 날, 나는 ‘한국가요사 편찬위원’들과 함께 목포에 갔다. 흑산도로 가기 위해서였다.

 

열차가 종착역 목포에 도착했을 때, 일행 중에 문치갑, 하장근, 박대호, 김청일 씨는 한동안 플랫폼에 서 있었다. 이난영 씨의 노래 ‘목포는 항구다’가 스피커에서 애절하게 흘러 나왔던 것이다. 얼마나 절실한 ‘목포의 노래’인가. 그리움처럼 애틋한 ‘목포의 연가’인가. 일행들은 애절한 노래의 봄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노래시도 서정적이지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가 누구인가. 가요계의 여왕, 이난영 씨가 아닌가. 우리 가요사를 빛낸 목포 출신의 ‘엘레지 여왕’이 아니겠는가. 현지에서 들으니 노래는 더 정서적이었다. 노래 마디마디가 우리 ‘한국 가요사 편찬위원’들의 가슴을 봄비처럼 흠뻑 적셨다.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