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16/문화일보)

해군52 2012. 7. 18. 11:23

타국만리 독일로 외화 벌이 떠나던 시절 연인끼리 가족끼리…‘이별의 아픔’노래

(16) 박춘석·문주란의 ‘공항의 이별’

 

문주란은 남자의 키로 노래한다. 그만큼 음폭이 넓기 때문이다. 감미롭고 부드러운 음색. 그래서 ‘부드러움보다 더 강한 건 없다’는 말을 우리는 그녀의 노래에서 새삼 느끼게 된다. “저 부산 가시나 아임니꺼…. 마, 잘 봐 주이소.” 무뚝뚝한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노래는 세련미가 넘친다. 고음을 내 지를 땐 포박당한 야수의 울부짖음 같은 처절한 목소리에 휘감기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15세의 소녀가수 문주란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가요계를 흔들었다. 데뷔곡 ‘동숙의 노래’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게 그녀의 한계인가. 워낙 제1탄이 빅 히트이다 보니, 그 진동 여파로 제2탄이 문제였다. 웬만해서는 제1탄을 압도하지 않으면 그 그늘에 묻히기에…. 큰 히트송의 영향력은 그만큼 컸던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지난 베트남 파월장병 이후, 또 한 번 인력을 수출하기 시작한다. 서독으로 가는 광부와 간호사들. 이들은 외화를 벌려고 타국 만리로 떠난다. 그러나 지원한다고 다 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시험을 거쳐서 합격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광부 경험이 없었던 대학생 출신은 광부의 거친 손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연탄재와 석탄 더미에 손을 문질러댔다. 간호사 또한 서독으로 가기 위해 병원에 임시 취직해 혈관 주사 및 마사지 등을 배워야만 했다.

 

그날. 이들이 떠나는 김포공항은 눈물의 부두가 되고 만다. 누가 가고 싶어서 가고, 헤어지고 싶어서 보내겠는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가족끼리, 또는 젊은 연인들끼리…. 당시 김포공항은 눈물이 넘치는 이별의 부두였다.

 

‘하고 싶은 말들이 쌓였는데도/ 한마디 말 못하고 헤어지는 당신을/ 이제 와서 붙잡아도 소용없는 일인데/구름 저 멀리 사라져간/ 당신을 못 잊어 애태우며/허전한 발길 돌리면서/그리움 달랠 길 없어/나는 걸었네. 수많은 사연들이 메아리쳐도/지금은 말 못하고 떠나가는 당신을/이제 와서 뉘우쳐도 허무한 일인데/하늘 저 멀리 떠나버린 당신을 못 잊어 애태우며/쓸쓸한 발길 돌리면서/그리움 참을 길 없어/나는 걸었네’

 

공항의 이별은 한 시대의 아픔. 그리고 오늘의 우리 경제가 있기까지의 고통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역사에 남기고 싶었다. 가요는 시대의 지문이 아니겠는가…. 그때 예술윤리위원회는 나중에 공연윤리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지만 사전심의가 유별났다. 퇴폐풍조 조성이라는 미명 아래 웬만한 것은 모두 잘랐다. 이때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維新體制)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날 가족을 보낸 탓일까? 나는 공항의 이별에 이어 ‘눈물로 끝난 사랑’에 노래시를 다시 붙였다. 도무지 충동을 걷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도 떠나기를 아쉬워한 사람을/ 보내고 돌아오는 김포가도/ 창밖을 스쳐가는 싸늘한 바람/ 쌓이고 쌓였던 지난 사연/ 구름 속에 사라졌네/ 수많은 별 같은 추억을 안고/ 쓸쓸하게 돌아오는 밤 깊은 김포가도. 그렇게도 헤어지길 망설이던 사람을/ 보내고 돌아오는 김포가도/ 두 눈에 아롱지는 가버린 얼굴/ 쌓이고 쌓였던 지난 사연/ 구름 속에 사라졌네/ 수많은 별 같은 추억을 안고/ 쓸쓸하게 돌아오는 밤 깊은 김포가도.’

 

정두수 작사·박춘석 작곡, 남진이 부른 ‘김포가도’이다. 문주란은 ‘공항의 이별’로 재기한다. 작품(작사·작곡)도 주효했지만, 무엇보다 가수가 지닌 잠재력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작가(작사·작곡)의 몫은 가수의 숨겨진 능력을 찾는 데 있다. 문주란 특유의 개성, 문주란만이 가지고 있는 호소력을 살릴 때, 노래뿐만 아니라 작품도 살아나는 것이다.

 

재기곡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대를 넘어서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낙조’에서도 비애와 허무함을 깔고 사랑의 선율로 전개한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삶의 응어리’는 노래로 풀어야 하는 것. ‘익자삼우(益者三友)’란 뜻은 세 사람 모두 자기에게 유익한 이득을 보자는 게 아니던가. 가수는 가수대로, 작곡가는 작곡가대로 작사가는 작사가대로의 합심(合心). 그리하여 ‘삼위일체(三位一體)’로 엮는 하모니는 히트의 비법인 것이다.

 

문주란이 잘 부른 ‘동숙의 노래’ ‘공항의 이별’ ‘돌지 않는 풍차’ 이외도 ‘백치 아다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얼마나 잘 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말한다. 문주란에게는 목가풍이나 연가 같은 세미 트로트 풍의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를 테면 ‘봄날은 간다’ ‘덕수궁 돌담길’ ‘외나무다리’ 같은 노래 말이다. 가수가 되지 않았으면 문학을 했을 그녀. 그만큼 문주란은 문학 재능도 있고 기질도 있다. 사색과 고독을 즐기는 독신녀 문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