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18/문화일보)

해군52 2012. 8. 1. 11:27

암울한 ‘시대의 아픔’ 달래준 저항가요, 청바지… 통기타… ‘포크송 시대’ 열어

(18)김민기·양희은의 ‘아침이슬’

 

1970년에 창작돼 그 이듬해에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양희은이 취입하자,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행진곡풍의 이 노래시는 당시 암울한 시대에 아파 하던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본래 의도와는 사뭇 다르게 변질됐다. ‘목적가요’가 아닌 순수한 마음에서 창작한 작품이 ‘저항가요’로 불려졌던 것이다.

 

마치 시위를 하는 운동권의 주제가처럼 여기저기서 넘쳐난 것이었다. 그래서 창작인의 손에서 떠난 작품은 이미 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양희은은 ‘아침이슬’을 신선하게 불렀다. 맑고 고운 높은 소리로 카랑카랑하게 노래시를 읊듯 뛰어난 가창력으로 노래했다. 진솔한 마음의 울림은 노래를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줬다. 가슴속에 와 닿았던 것이다.

 

1971년의 어느 봄날. 서강대에 입학한 열아홉 살의 양희은이 종로에 있는 ‘청개구리’모임에 갔을 때다. ‘아침이슬’을 취입한 김민기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처음 듣는 노래이지만 그녀는 반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아침이슬’은 서정적이면서도 젊은 패기가 넘치는 노래였다. 특히 ‘거친 광야에 나 이제 가노라’의 노래시 대목은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양희은은 친구에게 부탁해 ‘아침이슬’을 취입한다. 김민기와 양희은의 운명적인 만남은 포크송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때 청바지와 통기타는 청년문화의 상징이었다. 시대의 아픔을 관통하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되자 이 노래는 지하로 스며든다. 작가 김민기 또한 기관에 연행돼 곤혹스러운 문초를 받았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집념은 접을 수 없어 그는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남의 이름을 빌려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을편지’ ‘늙은 군인의 노래’ ‘상록수’ ‘작은 연못’ ‘새벽길’ 등이 그것이다.

 

1972년. 김민기는 고은 시인의 아름다운 노래시에 곡을 붙인다. 최양숙이 부른 ‘가을편지’가 그것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낙엽이 쌓이는 날/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낙엽이 흩어진 날/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모든 곳을 헤매인 마음/보내 드려요/낙엽이 사라진 날/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세노야 세노야/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산과 바다엔 우리가 가네/세노야 세노야/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 세노야 세노야/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1972년. 외국곡에 노래시를 붙인 고은 작사, 양희은의 노래다. 암수술을 두 번씩이나 받고도 한국 가요계에 우뚝 솟은 양희은.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욱/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안녕 안녕 목 메인 그 한마디/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 밤새워 하얀 길을 나 홀로 걸었었다/부드러운 네 모습은 지금은 어디에/가랑비야 내 얼굴을 거세게 때려다오/슬픈 내 눈물이 감춰질 수 있도록/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 미워하며 돌아선 너를 기다리며/쌓다가 부수고 또 쌓은 너의 성/부서지는 파도가 삼켜 버린 그 한마디/정말 정말 너를 사랑했었다고/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

 

양희은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원하다. 기도처럼 마음을 열고 우러나는 감정을 진솔하게 노래하기 때문이다. 가장이 없고 꾸밈이 없는 노래가 바로 양희은의 매력이다. 화려하지 않은 이 특유의 정감에 그녀의 팬들은 사로잡힌다. ‘들길 따라서’ ‘내 님의 사랑은’ ‘일곱 송이 수선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한계령’ ‘한 사람’ ‘하얀 목련’ ‘아름다운 것들’ ‘숲’ ‘못 다한 노래’ ‘내 나이 마흔 살에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그녀의 명가요는 참으로 많다. 삶의 거친 바다를 헤치고 나온 그녀가 아닌가. 그래서인지 중년에 와서는 음폭이 넓어지고 중량감이 실린다. 깊고 오묘한 신비의 맛이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달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내 가슴을 쓸어내리네/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떠도는 바람처럼/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계령’이다. 세계일주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온 양희은에게 한계령이 다가섰다. 팬들의 사랑의 금자탑으로 솟아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