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고갯길에서 이별하는 두 남녀, 질박한 노랫말에 애달픔 더해 ‘울컥’
(25) 반야월 ― 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
충청북도 충주시와 제천시를 잇는 큰 고개 하나가 있다. 다시 말하면 제천시에서 충주로 넘어가려면 우뚝 선 재가 ‘천등산 박달재’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일부러 가지 않으면 못 가는 박달재. 하지만 1948년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 험한 재를 넘어야만 했다. 지름길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의 박달재를 넘어 가려면 차가 고장 나기 예사였다.
낡은 트럭에 짐을 가득 싣다 보니, 낡은 엔진이 어찌 말썽을 부리지 않으랴. 그래서 운행 중에 엔진이 꺼져 부속품을 갈아 끼우는 등 몇 시간을 보내야 겨우 출발할 수가 있다.
1948년 어느 가을날. 반야월 순회 공연단원들은 박달재를 넘다가 트럭이 멈췄다. 고장을 일으킨 것이었다. 운전수와 조수가 트럭을 손보는 동안에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기다려야만 했다. 일행 중에는 당시 악극 배우 김진규, 이예춘, 허장강 등이 있었다.
반야월은 ‘떡 입을 벌리고 떨어지는 알밤과 굴러 떨어지는 도토리를 보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그는 한 곳을 응시한다. 산 중턱에서 젊은 부부가 이별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었다.
“낭군의 허리춤에 도토리묵을 싸서 달아주는 여인. 먼 길에 요기라도 하라는 것일 게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차마 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 없었다. 반야월은 이 광경을 숙소에서 노래시로 썼다. 낭자의 마음이 되어….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도토리묵은 요기도 된다. 그때 식량난에 허덕이던 사람들은 그랬다.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다 먹는 게 해방 정국이었다. 그런데 여기 ‘박달재의 금봉’이가 누구인가? 이광수의 소설 ‘사랑’에 나오는 여주인공이다. 반야월은 문학도, 그는 문학 서적을 탐독하면서 노래를 공부했다. 그런 그가 사랑의 주인공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리라.
‘박달재와 물항라 저고리’ 그리고 ‘궂은비’와 ‘왕거미’. 이 어휘는 토속적이면서도 무속적이다. 향토성이 물씬 나는 서정미는 소박하다 못해 질박(質朴)하다. 이 뉘앙스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달인의 경지에서 찾은 안목(眼目)이며, 사고(思考)이다. 특히 2절에서의 절창을 보라.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그렇다. 부엉이 우는 산골은 깊은 산속? 그래서 성황당 돌탑이 있다. 고개에서 소원성취를 손 모아 비는 마음은 간절하다 못해 눈물 날 만큼 애달픈 것이었다.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 넘는 눈물고개/돌부리에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도라지꽃이 피는 고개마다 굽이마다/금봉아 불러보면 산울림만 외롭구나.’
이 노래의 백미는 ‘금봉아 불러 보면 산울림만 외롭구나’의 시구(詩句). 산울림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산울림이 왜 그렇게 외로운지를 터득했으리라. 아무렇지 않게 쓴 것 같아도 아무나 쓸 수 없는 것을 반야월은 쓴다. 세련미와 노련미를 때에 따라 부리고 안 부린다. 이건 타고난 문재(文才)만이 할 수 있는 것.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향 찾아서/너 보고 찾아 왔네 두메나 산골/도라지꽃 피던 그날/맹세를 걸고 떠났지/산딸기 물에 흘러 떠나가도/두번 다시 타향에 아니 가련다/풀피리 불며불며 노래하면서 너와 살련다. 재를 넘어 영을 넘어 옛집을 찾아/물방아 찾아 왔네 달뜨는 고향/새소리 정다운 그날 맹세를 걸고 떠났지/구름은 흘러흘러 떠나가도/두번 다시 타향에 아니 가련다/수수밭 감자밭에 씨를 뿌리며 너와 살련다.’
이 노래 ‘두메산골’에서 보듯이 반야월의 작품은 향토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섬처녀’ ‘소양강 처녀’ ‘삼천포 아가씨’ ‘단장의 미아리 고개’ ‘외나무 다리’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가수 박재홍은 인천 출신. ‘눈물의 오리정’ ‘마의 태자’ ‘내가 심은 해당화’ ‘화랑의 후예’ ‘마음의 사랑’ ‘경상도 아가씨’ ‘물레방아 도는 내력’ ‘마음의 고향’ ‘향수’ 등을 남기고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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