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아가씨 끈끈한 순정 담아 부산 떠나는 피란민 애환 읊조려
(28) 남인수-박시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
‘판문점 회담’이다, ‘휴전 회담’이다 하면서 질질 끌던 6·25전쟁은 이제 이쯤에서 끝내려는 모양이다. 생각하면 무엇을 위해서 싸웠던가. 이참에 통일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더 많은 피를 흘려야겠지만….
1952년 어느 가을날. 유호와 박시춘 명콤비는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생각대로 부산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유호 씨. 우리도 언젠간 서울로 돌아갈 것 아뇨? 피란민들 참 고생 많았지. 물도 귀해서 제대로 못 마시고, 단칸방이나 판잣집에서 10여 명의 가족이 새우잠을 자고….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울고 불고, 국제시장엔 발붙일 곳도 없고…. 그렇지만 말이오. 살면 고향이라고 부산에 정을 붙인 사람도 많을 것이고, 그래서 잊지 못할 사연이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거요. 부산 사람들한테 신세도 많이 지고 떠나기는 하겠지만, 그동안에 이렇게 저렇게 얽힌 정(情)…. 그런 노래를 하나 남기고 갑시다.”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모를 상태였지만 서울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었다. 숙소로 오자 박시춘은 기타를 잡았다. 멜로디가 튕겨져 나왔다. 유호는 노래시를 가다듬었다. 부산 사람들의 끈끈한 정을 떠올리면서 노래시를 써내려 갔다.
“서울 가는 12열차에 홀로 앉은 젊은 나그네….”
12열차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8열차니 30열차니 하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름없이 내다보는 창밖엔 등불이 존다….”
‘삐익ㅡ’ 하고 기적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경상도 아가씨가 슬피 우네/이별의 부산 정거장….”
박시춘은 남인수에게 곡을 주었다. 한두 번 나직이 불러보고 난 남인수는 빙긋이 웃었다.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는 목청을 돋우어 정식으로 불렀다. 남인수 특유의 그 맑은 목소리가 부산을 떠나는 피란민들과 보내는 경상도 아가씨의 이별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박 선생님 좋습니다.”
남인수는 앉은 자리에서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연거푸 불렀다. 그것이 나중에 취입이 되어서 폭발적인 히트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유호가 말하는 ‘남인수가 빙긋이 웃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남인수가 악보를 받고 몇 번 노래를 흥얼대다 빙긋이 웃을 땐 이미 노래가 자신의 마음에 든다는 메시지. 그리고 히트의 조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한 많은 피란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 우네/이별의 부산 정거장. 서울 가는 십이 열차에 기대 앉은 젊은 나그네/시름없이 내다보는 창밖에 기적이 운다/쓰라린 피란살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끊지 못할 순정 때문에/기적도 목이 메어 소리 높이 우는구나/이별의 부산 정거장. 가기 전에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유리창에 그려보는 그 마음 안타까워라/고향에 가시거든 잊지를 말고/한두 자 봄소식을 전해주소서/몸부림치는 몸을 뿌리치고 떠나가는/이별의 부산 정거장.’
1953년에 발표한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피란민들의 애환이 어려 있었다. 이뿐이겠는가. 경상도 아가씨의 끈끈한 순정도 담겨 있었다. 유호와 박시춘과의 우정은 3년간의 피란살이를 함께할 만큼 돈독한 사이였던 것. 작품상으로서는 바늘과 실. 그리고 찰떡 궁합이었다. 남인수 또한 그랬던 셈이었고….
“내 그럴 줄 알았데이. 남인수 씨가 빙긋이 웃으면 대박이 터진다니까…. 일제강점기 때 ‘울며 헤어진 부산항’을 장세정 씨에게 주려고 연습시키는데, 이게 도무지 안 되지 뭐야. 옆에 있던 남인수 씨가 곡을 듣고 빙그레 웃기에 남인수 씨더러 불러보라고 했지. 그런데 이게 일을 냈어. 대히트였지 …. 헛헛.”
역시 대박이 터졌다. 당시 레코드 사상 초유의 판매 기록을 내고 말았다. 이 노래, ‘이별의 부산 정거장’….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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