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제가 두목 선생님께 전화드리는 것보다
두목 선생님께서 제게 전화하시는 일이 더 잦아졌습니다
뭐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통화내용이라야 이런 정도입니다
“일 좀 되가나?”
“예,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잘 될 겁니다”
“대답 한번 시원해서 좋은데 내일 점심 먹으러 와라”
“내일은 안 되고, 다음주 쯤에 꼭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도 약 한달 간격으로 두 번의
해외출장 중에 연속해서 선생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지금 **에 와 있는데 돌아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해외로 다니는 걸 보니 일이 잘 되나 보다”
해외출장 중에 이런 통화를 하기는 했지만, 돌아와서도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못 드렸는데 또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중국 황산 가 봤나?”
“예, 몇 년 전에 한번 갔었습니다”
“4월 **일에 친구들 모임에서 황산을 가기로 했는데
한명씩은 더 데리고 가도 된다고 하니까 같이 가자
너한테 처음 연락하는 거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이라면야 주말 끼고 어찌 다녀올 수 있겠지만
중국 황산을 다녀오려면 아무리 짧아도 3박4일은 잡아야 되고
친구분들하고 가신다면서 왜 나보고 가자고 그러실까?‘
머릿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못 갑니다’라는 대답을
못한채 얼버무리고 말았고, 한번 찾아뵙고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만 하면서 또 2주일쯤 그냥 지나버렸습니다
며칠전 이천에 있는 거래처 공장에 다녀오다가 시간이 조금 남고
날씨도 좋기에 봄구경하는 기분으로 자주 다니던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올라오다보니 선생님 사무실 쪽으로 방향이 잡혔습니다
전화를 드리니 마침 저녁 약속이 있어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셨고
그러면 잠시 차라도 한잔 하러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들렀는데
결국 찾아온 손님들하고 함께 저녁까지 하고 헤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손님들과 대화 중간중간에 제자 자랑을 과도하게 하시면서
한편으로는 40년전 젊은 시절을 회상하시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저도 틈틈이 끼어들어 추임새처럼 선생님의 무용담을 소개하면서
슬쩍 제가 하고 싶던 말씀도 드린 결과,
중국 황산은 빠지고 대신 설악산으로 낙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동네 횟집에서 먹은 저녁값은 언제나처럼 선생님께서 내셨고
저는 섣불리 마신 소주 몇잔 때문에 집에까지 대리운전으로 왔지만
그날 저녁은 대단히 많이 남는 장사였습니다^^
오랜만에 선생님을 그것도 자발적으로 찾아뵈었고,
선생님께서 바라시는대로 저녁 식사도 함께 했고,
마음에 걸리던 황산 문제도 해결했으니 말입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으셨을 때 30대 초반의 혈기방장하시던 선생님도
아들딸 모두 혼인시키고, 하시던 사업도 아드님에게 물려주시고 나니
이제는 많이도 외롭고 누군가 대화 상대가 필요하신가 봅니다
‘제가 아직은 먹고 사는 일에 매여서 시간 내기가 어렵지만
조금만 지나면 선생님하고 많이 놀아 드리지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다짐을 하기는 했는데
먹고 사는 일이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