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올리비에,
그 이름을 처음 대했을 때 나는 '개미'나 '뇌'와 같은,
내가 잘 읽지 않는 이상한 종류의 소설을 쓴 작가
그 사람을 생각했었을 만큼 아주 낯선 이름이었습니다
게다가 400쪽이 넘는 두꺼운 책 세권 모두에
사진이라고는 여행 중 찍은 저자의 흑백 사진 딱 한 장씩뿐
그 외에는 누런 종이 위에 온통 까만 글씨뿐이었으니
처음에는 그 책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걷는다’라는 책의 제목이
‘걷고 싶다’라는 내 오래된 글의 제목을 생각나게 했고,
그 제목에 홀려서 그 책을 집어온 것이 2005년 5월 10일이었고,
그 책을 읽은 것은 그로부터 1년도 더 지난 2006년 가을이었고,
그리고 그 책과 저자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다시 그로부터 여섯달쯤 지난 바로 오늘입니다
1938년생인 프랑스 사람 베르나르 아저씨,
30여년간 신문과 잡지사에서 활동한 호기심 많은 정치부 기자이자
잘 알려진 사회경제면 칼럼니스트였다고 합니다
고교과정을 독학한 열렬한 독서광이었던 그 아저씨는
특히 역사분야의 책들을 탐독하면서
서양인은 동양에 진 빚이 크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기로 결심했고
은퇴한 후인 1999년, 60세가 넘은 나이에
터키의 이스탄불을 출발, 중국의 시안까지 실크로드 12000킬로미터를
4년(1099일)에 걸쳐 도보여행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실현했습니다
물론 4년동안 계속 걸은 것은 아니지만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4년에 나누어
전구간을 단 1킬로미터도 빼먹지 않고
걸어서 여행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을 비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서’ 갈 것,
서두르지 말고 ‘느리게’ 갈 것,
낯선 곳의 경치와 풍습들을 요란스럽고 화려하게 소개하지 않고
자신의 여정과 느낌들만을 사진 한 장 없이 꼼꼼하게 담아낼 것
계획 단계에서부터 이런 방침을 세웠고
계획대로 실행한 여행의 결과를
사진을 넣지 않고 글만 빼곡하게 들어있는
두꺼운 세권의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그가 거친 여정은
터키(이스탄불-앙카라-에르주룸)-이란(타브리즈-테헤란-에스파한-메세드)-
투르크메니스탄(아슈하바트)-우즈베키스탄(사마르칸트-타슈켄트)-
키르기스탄(바슈케크)-러시아(알마이타)-중국(카스-투루판-란저우-시안)으로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곳들입니다
내가 베르나르 아저씨에게 감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은퇴 이후 안락한 생활이 아니라
이런 엄청나게 험한 일을 계획하고 또 실천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침대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래서 절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는 그의 말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젊은 그의 생각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정말 닮아보고 싶은 점입니다
보통 여행기와 달리 사진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보면 볼수록 그의 여행에 함께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을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때로는 사기 당하고 도둑맞고 죽을 위기도 넘기고 병에 걸리기도 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 흥미진진합니다
나도 은퇴하고 나면 실크로드 같은 외국은 아니더라도
땅끝마을에서부터 휴전선과 동해바다가 만나는 곳까지,
아니면 전라남도 서쪽 끝에서부터 경상남도 동쪽 끝까지라든가
휴전선길 횡단 같은 조금 짧은 구간이라도 걸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걷는가?’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베르나르 아저씨의 책 ‘어디에나 있고 아무 곳에도 없다’
책을 번역한 분이 쓴 후기에 나오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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