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작사-10분 편곡으로 탄생한 명곡… 전국 곳곳 ‘차차차 노래방’ 선풍적 인기
(36) 김병걸-이호섭의 ‘다함께 차차차’
1991년 여름. 안양에 위치한 오아시스레코드사 2층 A 스튜디오. 편곡자 송태호의 손을 떠난 20인조의 편곡 스코어는 졸속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최고의 편곡자로 등극하는 송태호의 천재성이 발휘되는 현장이기도 했다. 드디어 ‘다함께 차차차’의 연주 순서가 되고 연습용 합주가 시작되었다.
퍼스트 기타를 치는 백전노장 이유신이 장미 담배를 입 안에서 빙빙 돌리며 키득대기 시작했다. “쨘쨘쨘 짜란짜라쨘 쨘쨘쨘 짜란자라자 짠짠짠.” 악사들 모두 박장대소, 지독한 복고 풍에 조금은 촌스러운 전주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녹음 당일 녹음실에서 연주 한 시간 전에 작곡자 이호섭한테서 건네받은 곡조를 당혹해하며 송태호는 담배 한 대를 물 겨를도 없이 오선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며칠 전에만 악보를 주었더라면 지금의 전주와는 다르게 편곡됐을지도 모른다.
악사들은 웅성웅성하며 이 노래 참 재미있다며 약간은 조소를 보냈고 곡을 쓴 이호섭과 작사를 한 김병걸은 “그래 웃어라 두고보면 알 일”이라며 마음을 달랬다.
‘두고보면 알 일’이 기어이 일어났다. 이 노래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전국에 ‘차차차 노래방’과 ‘차차차 노래연습장’ 등 다함께 차차차의 열풍은 영업장 상호에까지 파급되면서 그 인기를 입증했다. 이호섭이 건넨 악보에는 “아무리 돈돈하는 세상이지만~”으로 시작되는 가사가 붙어 있었고 이호섭은 중간에 “근심을 털어 놓고 다함께 차차차/ 슬픔을 묻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이 대목은 건드리지 말고 앞뒤를 완성해 달라고 김병걸에게 주문하였고 녹음실 소파에 앉아 10분 만에 가사를 메웠다.
‘어차피 잊어야 할 사랑이라면/ 돌아서서 울지 마라 눈물을 거둬라/ 내일은 내일 또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 꺼야/ 근심을 털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잊자 잊자 오늘만은 미련을 버리자/ 울지 말고 그래 그렇게/ 다함께 차차차/ 어차피 돌아서 간 사람이라면/ 다시는 생각 마라 눈물을 거둬라/ 내일은 내일 또 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 꺼야/ 근심을 털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슬픔을 묻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잊자 잊자 오늘만은 미련을 버리자/ 울지 말고 그래 그렇게/ 다함께 차차차.’
“그래 그렇게”는 어떤 모습을 말하는 걸까. 또 “다함께 차차차”는 어떤 행위일까? 굳이 설명 안 해도 여러 뜻을 안고 있는 이 결구는 쉬운 듯 하지만 고도의 표현이다. 이처럼 안성맞춤의 마무리가 어디 있을까. 과연 김병걸이었다. 미련을 떨치고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 노력하는 자세가 이 시대에 필요치 않을까. 정적이던 설운도를 동적인 가수로 탈바꿈시킨 국민가요 ‘다함께 차차차’는 10분 작사에 10분 편곡으로 가히 기적을 일궈낸 명작 중 명작이다.
설운도는 1983년 이산가족의 재회를 열망하는 ‘잃어버린 30년’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 노래를 부를 때 그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반드시 히트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내놓은 여러 음반이 고전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자신을 키운 매니저가 공백을 가져 오는 등 수난을 겪었다. 더구나 전속사를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지구레코드사로 옮겼으나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길러낸 오아시스레코드사로 리턴하기에 이른다.
이 무렵부터 설운도는 자신이 직접 곡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근무하던 김병걸과 한남동에서 이웃하며 ‘원점’을 콤비한 이호섭과 셋이 의기투합하여 취입한 작품이 바로 ‘다함께 차차차’이다.
1980년대 중반은 김병걸, 이호섭 이 두 명콤비의 화려한 출현을 알리는 시기였고 이 두 사람은 ‘다함께 차차차’ 외에도 편승엽의 출세작인 ‘찬찬찬’과 요즘 대세인 강 진의 ‘삼각 관계’ 등 주옥 같은 히트송을 연이어 쏟아낸다.
문희옥의 ‘사투리 디스코’ 시리즈와 주현미의 ‘짝사랑’ ‘어제같은 이별’ ‘추억으로 가는 당신’,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 등의 히트곡을 작사하여 주가를 높이던 이호섭과 서울시스터즈의 ‘청춘열차’와 MBC강변가요제 이순길의 ‘끝없는 사랑’, 미소년 박혜성의 ‘도시의 삐에로’, 장은숙의 ‘사랑하는 내곁에’ 등 일련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던 김병걸, 이 둘은 손을 잡고 작사가 이호섭을 작곡가로 변신시키며 합작한 데뷔작 ‘다함께 차차차’로 초구에 홈런을 쳤다.
이 당시는 메들리 붐이 일어나 메들리 음반을 만드는 그 자체가 돈이던 시절이었는데 모든 메들리음반의 머리곡은 단연 ‘다함께 차차차’였다. 거리마다 리어카에서 파는 비품 음반에도 첫곡으로 수록되어 이 나라 구석구석을 ‘다함께 차차차’로 울렸다.
'노래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38/문화일보) (0) | 2012.12.26 |
---|---|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37/문화일보) (0) | 2012.12.18 |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35/문화일보) (0) | 2012.12.05 |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트로트의 재발견 (중앙일보) (0) | 2012.12.02 |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34/문화일보) (0) | 2012.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