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35/문화일보)

해군52 2012. 12. 5. 10:57

늘 가슴을 짓누르던 고향 노래의 꿈… 10년만에 금의환향 열차서 恨 풀어

(35) 손석우-남인수의 ‘내 고향 진주’

 

“난영아. 그 노래를 좀…. 불러다오.” 1962년 6월 26일. 가수 남인수는 을지로에 있는 백병원에서 동료들이 부르는 ‘황성옛터’를 들으면서 운명한다. 가수 이난영, 장세정, 백설희, 현인 씨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4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것이다.

 

‘황성옛터’는 그가 무대에서 즐겨 부르던 애창곡. 당시 일본인들조차 ‘조선의 세레나데’로 일컫던 우리민족 가요이지 않은가. 특히 노래시 3절은 남인수가 두견새 울음처럼 피를 토하듯 가슴이 찢어지게 불렀던 것.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어도/아, 괴로운 이 심사를 가슴속 깊이 묻고/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촉석루와 의암바위, 진주성과 남강은 우리 역사를 말한다. 그래서인지 진주는 예부터 역사와 문화 예술의 도시였다. 뿐만 아니라 서부 경남의 중심지로 교육과 행정, 교통이 편리한 선비 고을이기도 했다.

 

진주에 태어나서 진주 노래를 못 부른 가수 남인수. 그는 누구보다도 애향심이 강했다. 손목인 이재호 등 진주 출신의 내로라하는 작곡가는 있었지만 레코드회사의 소속이 저마다 달라서 ‘고향 사랑’의 노래를 못 부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고향 노래의 꿈은 진주로 가는 열차에서 이뤄진다

 

1955년. 이 무렵은 연예인 지방 공연이 활발하던 시기. 남인수 또한 지방 순연을 하고 있었다. 엄토미, 손석우, 노명석, 김창호 등이 악단 멤버. 열차가 마산을 지나 진주로 가고 있을 때, 손석우의 여사(旅舍) 방문을 누가 두드렸다. 남인수였다

 

“손형. 이번 ‘진주 공연’이 나에겐 10년 만입니다. 나는 여태껏 고향 노래를 부른 적이 없소. 손형이 아시다시피 그동안 인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마음의 걸림돌이 되어 마치 고향의 죄인처럼 진주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소. 진주 노래를 이번 방문 때 꼭 부르고 싶소. 노래를 부탁합니다.”

 

남인수는 너무 진지했다. 누가 들어도 감동을 느낄 만큼 고향 진주에 대한 절실한 사무침이었다. 그러나 손석우는 진주를 잘 몰랐다.

 

“진주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산이며 강이며 역사, 그리고 유래며 전설…. 들려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석우는 상념에 잡혔다. 그 스스로가 망향의 강렬한 일념에 사로잡힌 남인수의 심정이 되어 기타를 잡았다. 남인수가 들려준 진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노래시와 곡을 동시에 진행했다.

 

‘삼천리 방방곡곡 아니 간 곳 없다마는/비봉산 품에 안겨 남강이 꿈을 꾸는/내 고향 진주만은 진정 못해라/유랑 천리 십 년 만에 고향 찾아왔노라/마음의 채찍치며 달려왔노라. 고향에 누구라서 가고 싶지 않을까만/의곡사 종소리에 남강이 슬피 자는/내 고향 진주만은 진정 가고파/뛰는 가슴 달래면서 고향 찾아 왔노라/옛 이름 부르면서 물어 왔노라. 강산도 변하는데 의구하길 바랄까만/촉석루 어디 가고 이 마음 울리느냐/내 고향 진주만은 진정 못 잊어/삼백 예순 사시절을 그리다가 왔노라/환고향 그날만을 바라왔노라.’

 

남인수의 진주 공연은 그를 기다리던 고향 팬들이 모여들어 대성황이었다. 진주 팬들은 물론 인근의 사천 삼천포 하동 남해 의령 고성 산청 함양 팬들까지 찾아와서 입추의 여지가 없었던 것. 극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환호 속에서 남인수가 ‘내 고향 진주’를 끝 곡으로 불렀을 때 팬들은 눈물을 글썽대며 숙연해지기도 했다. 남인수는 이어서 그 자신이 취입을 못한 진주 노래도 불렀다.

 

‘물소리 구슬프다, 안개 내린 남강에서/너를 안고, 너를 안고, 아∼ 울려주던/그날 밤이 울려주던 그날 밤이/음∼ 파고드는 옛 노래여. 촉석루 옛 성터에 가을달만 외로이/낙엽소리, 낙엽소리, 아∼처량쿠나 그날 밤은/너를 안고 울었소/음∼ 다시 못올 꿈이여. 고향에 임을 두고 타향살이 십여 년에/꿈에라도 꿈에라도 아∼잊을소냐 그대 모습/정들자 헤어진 임, 음∼ 불러라 망향가를.’

 

‘남강의 추억’을 작사·작곡한 이재호는 남인수의 고향친구. 남인수는 남강의 추억을 부른 다음, ‘진주라 천리길’을 부른다.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고/촉석루엔 달빛만 나무기둥을 얼싸안고/아∼ 타향살이 심사를/위로할 줄 모르누나.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고/남강가에 외로이 피리소리를 들을 적에/아∼ 모래알을 만지며/옛 노래를 불러 본다.’

 

1941년. 이규남이 부른 이가실(조명암) 작사, 이운정(이면상) 작곡의 ‘진주라 천리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