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41/문화일보)

해군52 2013. 1. 23. 11:09

여대생과 아련한 짝사랑 추억… 미련과 아쉬움 애절하게 노래

(41) 전오승-여운의 ‘과거는 흘러갔다’

 

스쳐지나간 일인데도 사람들은 곧잘 과거를 떠올린다. 배 떠난 나루처럼 과거는 공허하련만 그래도 미련과 아쉬움은 남는다. 1968년 여름. 가수 여운이 불러 사람들의 가슴을 젖게 한 노래 ‘과거는 흘러갔다’는 바로 이런 사연을 담고 있다.

 

대구 대륜고등학교 시절. 야구 투수로서 맹활약을 하던 여운은 야구뿐만 아니라 육상, 수영, 테니스에 이르기까지 만능 운동 선수였다. 그런 그는 노래도 잘 했다. 날렵한 몸매와 훤칠한 키. 기린처럼 긴 목을 갖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면 동료들은 그를 가수로 나서 보라고 충동질했다.

 

그래서 귀공자 타입의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갈등과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당시 여운이 잘 부르던 애창곡은 가수 나애심의 ‘언제까지나’와 ‘미사의 종’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레퍼토리였다. 물론 듣기 좋고 감미로운 사랑을 담은 노래라면 가요와 팝송을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그는 틈만 나면 음악이 흐르는 음악실로 찾아 다녔다. 운동 연습 시간보다는 음악실에 틀어박혀 혼자 있는 게 더 좋았던 것이다. 시합을 앞둔 선수가 연습 도중에 사라졌다면 이는 확실히 탈이 난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 뒤에는 ‘잠수함’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체육 선생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야구부에 끌려 왔지만 그는 이때 대학 진학이나 야구선수보다도 가수의 꿈에 더 정열을 쏟고 있었다. 한번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잠수함’의 종적은 찾을 수 없다. 졸업을 앞둔 그가 음악실에 파묻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조차 못했던 것.

 

여운은 이 무렵 음악실에서 한 여대생을 만나 이성의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음악실 앞좌석에 늘상 혼자 나와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이 여대생의 뒷모습에 차츰 뜨거워지는 가슴을 어쩌지 못했다.

 

그런 어느 날. 그 여대생은 군복을 입은 남자 친구와 앉아 있었다. 다정하게 귀에 대고 속삭이는 걸로 보아 이미 그 사이가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고교 졸업을 하고서도 그는 여대생에 대한 못다 한 그리움을 안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진학 대신 가수가 되겠다는 각오로 인현동 명보극장 옆에 있던 전오승 음악학원을 찾았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 아무리 미련에 집착해도 한번 흘러간 세월의 강을 다시 돌릴 수 없지 않겠는가. 잊어버리자, 그 사람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지워 버려야만 한다.

 

‘삼일로 고갯길을 같이 가던 그날 밤/영원토록 이 거리를 잊지 말자고/거니는 발자국에 새긴 그 사랑/날이 새면 지워질까, 삼일로 고갯길. 삼일로 가로등을 세며 가던 그날 밤/영원토록 이 등불을 잊지 말자고/거니는 순간에는 즐거웠지만/내일이면 추억 남길 삼일로 고갯길.’

 

1967년 월견초 작사, 전오승 작곡 ‘삼일로’는 데뷔곡 ‘황혼이 져도’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과거는 흘러갔다’를 야구방망이 대신 노래로써 크게 히트하게 된다.

 

‘즐거웠던 그날이 올 수 있다면/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 보련만/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잃어버린 그님을 찾을 수 있다면/까맣게 멀어져간 옛날로 돌아가서/못다 한 사연들을 전해 보련만/아쉬워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내가 이 노래 가사를 쓴 1968년경, 세광음악출판사에서 나오는 월간 ‘가요생활’에 ‘알기 쉬운 작사법’을 매달 연재하고 있었다. 마침 ‘과거에의 여행’이라는 부분을 쓰고 있을 때라 그 예문이 아쉬웠다. 물론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노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노래를 예문으로 들면서 나는 작사가는 드넓은 작품 소재를 찾아 끝없는 헌팅을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의 마음은 새로운 것보다 아름다운 것을 희구하기 때문에 유동적인 이 심성에 변화를 주는, 신선한 충격을 주는 노랫말을 써야 한다는 게 당시 나의 소신이기도 했다.

 

풍부한 경험은 작가의 자산. 헌팅에서 얻은 체험과 경험은 바로 자신 있게 글을 쓸 수 있게 하기 때문. 작품 소재의 세계를 쉬지 않고 여행하는 것은 경험이라는 과거의 묘지 위에 새 잔디를 입히는 것.

 

빚에 쪼들린 급박한 상황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쫓기듯이 남의 가정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속으로 뛰어들었고 ‘죄와 벌’의 세계까지 드나들지 않았던가. 악처에게 밀려난 톨스토이기에 시골의 조그만 간이역도 작품화됐고, 행동의 참여를 수반했기 때문에 앙드레 말로의 사상은 비로소 문학 작품이 됐다.

 

그렇다면 가수 여운의 청소년 시절의 경험도 노래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여운을 생각하며 ‘과거는 흘러갔다’를 작사했으며, 작곡은 전오승이 했다. 감미로운 음색에 폭 넓은 음폭. 뛰어난 가창력은 팬들을 사로잡았다. 준수한 용모와 함께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