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 삼촌과 어린시절 추억… 눈내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 노래
(42) 김다인-백년설의 ‘고향설’
‘한송이 눈을 봐도 고향눈이요/ 두송이 눈을 봐도 고향눈일세/ 깊은 밤 날아 오는 눈송이 속에/고향을 불러보는 고향을 불러보는/ 젊은 푸념아. 소매에 떨어지는 눈도 고향눈/ 뺨 위에 흩어지는 눈도 고향눈/ 타관은 낯설어도 눈은 낯익어/ 고향을 외워보는 고향을 외워보는/ 젊은 한숨아. 이 놈을 붙잡아도 고향 냄새요/ 저 놈을 붙잡아도 고향 냄샐세/ 내리고 녹아가는 모란 눈 속에/ 고향을 적셔보는 고향을 적셔보는/ 젊은 가슴아.’
1941년 정초 ‘고향설’의 작사가 김다인(조명암의 필명)은 서울 서대문에 있는 동양극장에서 창 밖에 내리고 있는 함박눈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아침 나절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저녁 무렵에 이르러서는 온 장안을 하얗게 뒤덮었다. 김다인은 만주에 있는 삼촌을 생각하고 있었다.
삼촌은 그와 동갑내기. 늦게 막내 아들을 본 할아버지와 일찍 장가를 든 아버지는 한 지붕에서 같은 해에 할아버지는 아들과 손자를, 그리고 아버지 쪽에서는 동생과 아들을 두는 경사를 치른 것이다. 아버지는 외아들이었기 때문. 그래서 김다인은 동갑내기 삼촌과 한학교에 다니면서 친구처럼 지냈다. 학교 성적도 1, 2등을 서로 바꿔하면서 고등보통학교까지 줄곧 한 반에 다녔다. 그러나 삼촌은 학교를 졸업하자, 동경 유학을 조카에게 양보하고 만주로 달아났다.
학비로 쪼들릴 김다인을 위해 삼촌은 장사를 하겠다면서 어느날 꼭두새벽, 메모 한 장을 조카가 자고 있는 방에 밀어 놓고는 기어이 북행열차에 몸을 실은 것이었다.
삼촌이 독립투사로 활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경찰서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붙들려 가면서였다. 이때 그는 동경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삼촌의 성격이나 기질로 보아 능히 그런 일을 할 사람이라고 짐작했던 것.
1939년 2월. 중국 광서성 유주에서 조직된 광복전선 청년공작대의 일원으로 삼촌은 활약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들을 독립투사로 둔 대가로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다가 그 후유증으로 별세하고 만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집요한 감시의 눈초리는 동경 유학생 김다인에게까지 번득였다. 미행을 하거나 수시로 하숙방에 들이닥쳐 몸과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가 삼촌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집을 나간 지 꼭 햇수로 7년째가 되는 바로 이날 아침 나절이었다. 비좁은 전차 안에서 누가 똘똘만 쪽지를 그의 손에 꼭 쥐여주는 것이었다. 순간 그의 뇌리에는 퍼뜩 스치는 예감이 있었다. 삼촌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황급히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미행당할까 봐 골목길을 돌아 찻집에 들렀다. 화장실에서 펼쳐본 쪽지에는 그의 짐작대로 삼촌의 글이 씌어져 있었다. 동상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으니 약을 구할 수 있다면 쪽지를 전해준 사람에게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접선 날짜와 시간, 장소를 암기하고는 쪽지를 얼른 불에 태웠다.
담배를 문 김다인의 눈은 온통 삼촌 얼굴로 덮였다. “아! 길호 삼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순간 삼촌의 이름을 불렀다. 겨울 내내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을 만주에서 지금 삼촌은 동상에 걸려 있지 않는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광복군에 들어가 이 겨울을 악조건과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순간 눈을 좋아했던 삼촌과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고향설’을 원고지에 갈겼다. 이날 밖에는 함박눈이 온종일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1930년 초기부터 극작과 시 및 가사를 쓴 작사계의 태두, 김다인. 그의 본명은 조영출. 충남 아산 태생이다.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시단에 등단한다. 그리고 시가(詩歌·노래시) 부문에서는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상했다. 대표작 ‘낙화유수’를 비롯, ‘고향설’ ‘목포는 항구다’ ‘선창’ ‘꿈꾸는 백마강’ ‘알뜰한 당신’ ‘진주라 천리길’ ‘눈오는 네온가’ ‘남아 일생’ ‘남매’ ‘청년 고향’ ‘서귀포 70리’ ‘울며 헤진 부산항’ ‘어머님전상서’ ‘목단강 편지’ ‘꼬집힌 풋사랑’ ‘초립동’ ‘꼴망태 목동’ ‘화류 춘몽’ ‘고향 소식’ ‘역마차’ ‘소주 뱃사공’ ‘코스모스 탄식’ ‘경기 나그네’ ‘바다의 교향시’ ‘해방된 역마차’ ‘고향초’ 등 많은 명가요를 남겼다.
‘남쪽 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으면/ 뒷동산에 동백꽃도 곱게 피는데/ 뽕잎 따는 아가씨는 서울로 가네/ 정든 사람 정든 고향 잊었단 말인가. 찔레꽃이 한잎 두잎 물 위에 내리면/ 내 고향에 봄은 가고 서리도 찬데/ 이 바닥에 정든 사람 어디로 갔나/ 전해오는 흙 냄새를 잊었단 말인가.’
1947년. 친일파 재판이 한창일 때, 일제 말엽에 친일 군가를 많이 쓴 그는 월북해 북한에서 살다가 사망했다.
1993년 향년 80세. 작곡가 박시춘, 손목인, 김동진과는 1913년에 태어난 동갑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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