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고향 향한 애끓는 그리움 절절히… 감미로운 음색에 슬픈 리듬 팬들 ‘매료’
(44) 김운하-오기택의 ‘고향무정’
1966년 설날. ‘고향무정’의 작사가 김운하(본명 김득봉)는 이북도 실향민들이 망향제를 올리고 있는 임진강에서 북녘 하늘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발은 차츰 굵어지고 있었지만, 실향민들은 조상의 차례를 모시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김운하의 대학친구 김승철의 가족들도 그랬다.
1944년 일제 말기. 평양 숭실전문대 교수이던 승철의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이때 고향 함북 웅기에 내려와 있었다. 어수선한 시국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어업을 하던 승철의 집안은 정어리 어장과 공장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정어리 떼가 몰려다니는 서수라 바다에서 두만강이 끝나는 국경지대까지 고기를 잡으러 다녔다. 승철과 일본 명지대 문학부 동창이기도 한 김운하는 학교를 졸업하자 이곳에 눌러앉게 됐다. 정어리 공장 감독관으로 김 교수의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김 교수도 이때는 어부로 변신, 아들과 김운하를 데리고 자주 고깃배를 탔다.
“일본은 곧 망하게 돼! 이미 힘의 한계가 드러나고 말았거든…. 그래서 더 힘센 강대국에 잡아먹힐 거야….”
바로 눈앞에 몰려다니는 정어리 떼나 명태를 빤히 들여다보면서도 두만강 하류가 끝나는 바다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던 원양어선들. 핏빛 낙조가 물들기 시작한 바다에 눈길을 주며 어느 날 김 교수가 들려주던 말이었다.
그런 김 교수의 예언은 얼마 가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마침내 일본은 손을 들었고 붉은 군대는 군화소리도 요란스럽게 웅기에 들이닥쳤다. 그 해방꾼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북녘 땅을 짓밟았다. 일제의 수탈로 무엇 하나 온전하게 남은 것 없는 땅이건만 약탈, 강간, 체포, 처형, 유배 등의 만행이 저질러졌다.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웅기 부근의 국경지대 경흥 아오지 탄광에는 끌려 온 사람들로 형무소가 넘쳐났다.
“해도 너무 한단 말이야! 지금 모두들 제정신이 아니고 미쳐 있어! 전에 일본이 그 짝이더니 지금도 마찬가지야.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거든, 이래서는 안 되는데…. 정말 큰일이야 큰일!”
한반도 허리에 38선이 그어지자, 김 교수는 아들과 김운하에게 월남하기를 권유했다. 어수선하게 돌아가는 정국에 젊은 두 사람을 붙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로 가는 게 좋겠어. 이러고 있다가는 누가 당해도 당하고 말 테니까!” 가난한 문학도에게 웅기를 떠나라는 건 괴로웠다. 그러나 두 사람은 떠나야만 했다. 승철과 함께 그는 38선을 넘은 것이다.
남인수가 부른 ‘항구의 청춘시’, 이인권의 ‘눈물의 청춘’, 손인호의 ‘물새야 왜 우느냐’, 이미자의 ‘임이라 부르리까’ 등을 작사한 김운하는 이날, 흩날리는 눈발 속에 떠오르는 김민규 교수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으로 오기택이 부른 서영은 작곡의 ‘고향 무정’을 작사하게 된다.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산 아래/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산골짝엔 물이 마르고/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 있네. 새들도 집을 찾는 집을 찾는 저산 아래/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바다에는 배만 떠 있고/어부들 노래 소리 멎은 지 오래일세.’
‘고향무정’을 부른 저음 가수 오기택은 ‘영등포의 밤’을 비롯해 ‘등대지기’ ‘남산 블루스’ ‘우중의 여인’ ‘아빠의 청춘’ ‘마도로스 박’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힘 있는 가창력에서 쏟아내는 성량과 감미로운 음색은 많은 팬들을 사로잡았던 것. 특히 초기에 부른 ‘영등포의 밤’과 ‘등대지기’는 절창이었다.
‘궂은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내 가슴에 안겨오는 사랑의 불길/고요한 적막 속에 빛나던 그대 눈동자/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가슴을 파고드는 추억어린 영등포의 밤/영원 속에 스쳐오는 사랑의 불길/흐르는 불빛 속에 아련한 그대의 모습/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1965년 라희 작사, 김부해 작곡. ‘영등포의 밤’은 당시 석탄더미로 뒤덮인 영등포를 사랑과 낭만으로 정감에 넘치게 했다. 이어서 나온 강남평 작사, 김광 작곡의 ‘등대지기’는 서정의 분수령을 이룬다.
‘물새들이 울부짖는 고독한 섬 안에서/갈매기를 벗을 삼는 외로운 내 신세여라/찾아오는 사람 없고 보고 싶은 임도 없는데/깜박이는 등대 불만이 내 마음을 울려줄 때면/등대지기 이십년이 한없이 서글퍼라. 파도만이 넘나드는 고독한 섬 안에서/등대만을 벗을 삼고 내 마음 달래어보네/이별하던 부모형제 그리워서 그리워져서/고향 하늘 바라다보며 지난 시절 더듬어보니/등대지기 이십년이 한없이 서글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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