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이모에 대한 어린시절 情恨… “애틋한 그리움에 울컥…노래시로 읊어”
(46) 은방울 자매 ‘하동포구 아가씨’
1941년 가을. 나는 외할머님과 이모님 손에 이끌려 머슴과 함께 하동장에 갔었다. 당시만 해도 하동포구는 포구의 구실을 톡톡히 했다. 섬진강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뗏목에는 지리산의 온갖 약초며, 집채만 한 산나물더미 그리고 채소, 과일, 토종벌꿀 등이 실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멧돼지, 고라니 산토끼 같은 산짐승과 산꿩, 메추리 등 날짐승도 함께 실려 흘러왔다. 인근 항구 통영, 삼천포, 여수 등지에서도 통통배로 섬진강을 거슬러 하동 장날에 몰려들었다. 그래서인지 하동장은 북적댔다. 하동포구로 넘나드는 장배와 장꾼들로 파시를 이뤘기 때문.
내 나이 다섯 살. 그때 이모님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이날 외할머님은 이모님과 머슴 그리고 나를 데리고 하동장에 온 것이었다. 혼숫감 가게에 들려 이모님의 결혼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한 다음, 우리 일행은 재첩국집에 갔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어느 집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중절모자를 쓴 악기집 주인이 멋지게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기에…. 나는 그 오묘한 하모니카 소리에 넋을 잃고 말았던 것.
“두야. 이걸 갖고 싶어? 하긴 내가 결혼해서 떠나면 얼마나 적적하겠니….”
이모님은 주인에게 하모니카 부는 법을 물으면서 사줬다. 이날 이후 나는 입술이 부르트도록 하모니카를 불어댔다. 외갓집은 울창한 대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하모니카를 부는 게 일과였다. 부모 형제가 그립고 시집간 이모님이 생각날 때면 날이 저물 때까지 불어댔던 것이다. 산 위에 오르면 하동포구가 한눈에 펼쳐졌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어느 날. 외할머님은
“두야.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어?”
“응…정말 많이 보고 싶어. 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형과 동생…그리고 이모도 많이 보고 싶어….”
“좀 참거라. 니가 일곱 살이 되면 부산 학교로 보내기 위해 아버지가 널 데리러 온다….”
나는 다섯 살 때 외갓집에 와서 일곱 살까지 삼 년간을 자랐다. 손이 귀한 외가에 차출된 셈이었다. 외갓집은 드넓었다. 안채는 외할머님과 내가 기거했고 사랑채는 외조부님이 거처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랑채는 머슴들과 그 가족들이 살았다.
청소년이 되면서 나는 동요와 동시를 쓰게 된다. 그리하여 세월만큼이나 겹겹이 쌓인 외할머님과 이모님에 대한 정한(情恨)을 훗날 노래시로 썼다. ‘하동포구 아가씨’와 ‘쌓인정’이 그랬다. 특히 ‘하동포구 아가씨’는 두 편을 써 애틋한 그리움을 나타낸 것이었다.
‘하동포구 80리에 달이 뜰때면/정한수 떠놓고 손모아 빌던 밤에/부산 가신 우리 임은 똑딱선에 오시려나/쌍계사의 인경소리 슬프기도 한데/하동포구 아가씨는 잠못들고 울고 있네. 쌍돛대가 임을 싣고 섬진강 따라/정다운 포구로 돌아올 그날까지/새벽꿈에 아롱아롱 우리 임은 오시려나/쌍계사의 인경소리 임마중을 하는데 어이해서 못 오시나, 어느 날짜 오시려나.’
은방울 자매가 부른 송운선 작곡의 ‘하동포구 아가씨’다. 그러나 이 한 편의 노래로서는 당시 올올이 가슴에 맺힌 정을 지울 수 없었다.
‘쌍돛대 임을 싣고 포구로 들고/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쌍계사 쇠북소리 은은히 울 때/노을진 물결 위엔 꽃잎이 진다/80리 포구야, 하동포구야/내 님 데려다 주오. 흐르는 저 구름을 머리에 이고/지리산 낙락장송 노을에 탄다/다도해 가는 길목 섬진강 물은/오늘도 굽이굽이 흘러서 간다/80리 포구야, 하동포구야/내 님 데려다 주오.’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못 박힌 ‘쌓인 정’이 어찌 노래 몇 편으로 잊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길어 올려도 펑펑 솟아나는 고향의 샘물. 그건 눈물이었다. 정과 한(恨)이었다. 기부천사 가수 하춘화가 부른 노래만해도 ‘알고 계세요’ ‘첫사랑 이야기’ ‘옛성터’ ‘느티나무’ ‘대관령 아리랑’ 등 참으로 많다.
‘길이 아니면 오지 말 것을, 사랑의 그 먼길을/임 찾아 왔던 길, 임 따라 왔던 길/지금은 나 혼자서/날 저문 들녘에 떨고 있는 들꽃처럼/그렇게 그렇게 쌓인 정을 잊을 수 있나요. 임이 아니면 잊었을 것을 그리움의 세월을/임 찾아 왔던 길, 임 따라 왔던 길/지금도 못잊어서/바람에 날리는 이슬 젖은 낙엽처럼/그렇게 그렇게 쌓인 정을 잊을 수 있나요.’
사람들은 저마다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한다. 나는 고향을 소재로 67편에 이르는 하동 연가(戀歌)를 시와 노래로 썼다. ‘하동포구 아가씨’를 비롯해 ‘물레방아 도는데’ ‘삼백리 한려수도’ ‘꽃잎 편지’ ‘목화 아가씨’ ‘감나무골’ ‘고향의 그 사람’ ‘하동으로 오세요’ ‘섬진강’ ‘지리산’ ‘아랫마을 이쁜이’ ‘긴 세월’ ‘섬진강 나그네’ ‘섬진강 연가’ ‘하동 사람’ ‘시오리 솔밭길’ ‘발꾸미 포구연가’ ‘자주댕기’ ‘노량대교’ ‘내 고향 하동포구’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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