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54/문화일보) 게재 일자 : 2013년 05월 01일(水)

해군52 2013. 5. 1. 11:12

未知세계 동경한 김동환의 7·5조 민요시… 아름다운 멜로디·노랫말에 봄냄새 ‘물씬’

(54) 박재란의 ‘산 너머 남촌에는’

 

좋은 노래시에 좋은 곡이 붙여진다. 다시 말해 노래시가 빛나면 곡도 자연히 빛나게 된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보라. ‘고향’을 보라. 그리고 박화목 시인의 ‘보리밭’을 보라. 한결같이 아름다운 서정시가 아닌가. 또 이은상 시인의 ‘가고파’며 ‘옛 동산에 올라’ ‘그집앞’ ‘사우가’, 신사임당의 ‘동심초’,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은’, 박목월 시인의 ‘이별의 노래’ 등 유명한 우리 가곡들은 노래시와 함께 작곡 또한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아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1927년 1월. 시인 김동환이 7·5조의 리듬으로 쓴 민요풍의 시다. 주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마치 봄 하늘 구름밭에 숨어 우는 종달새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저 하늘 저 빛깔이 그리 고울까/아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떼/버들가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아지랑이 낀 봄날. 먼 산을 바라보면 행복은 산 너머, 고개 너머에서 손짓을 한다. 그래서 빛나는 꿈을 꾸듯 저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이다. 신비가 물씬 밴 저곳에서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사람이 산을 넘고 더 높은 산을 넘는 건 바로 이런 행복의 나라로 찾아가는 데 있다.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끊었다 이어오는 가느다란 노래/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1960년대 전반기는 가수 박재란의 전성시대. 부르는 노래마다 서민들의 가슴을 관통했던 것.

 

‘열무김치 담을 때는 님 생각이 절로 나서/설움 많은 이 팔자를 흔들어 주나/장마통에 맹꽁이야 너는 왜 울어/음∼음∼ 안타까운 이 심사를 흔들어 주나/맹이야 꽁이야 너마저 울어/아이고나 요 맹꽁아, 어이나 하리. 보리타작하는 때는 님 생각이 절로 나서/걱정 많은 이 신세를 흔들어 주나/논두렁에 맹꽁이야 너는 왜 울어/음∼음∼ 눈물짓는 이 심사를 흔들어 주나. 독수공방 깊은 밤에 님 생각이 절로 나서/장마통에 멍청스레 흔들어 주나/이 밤중에 맹꽁이야 너는 왜 울어/음∼음∼ 잠 못드는 이 심사를 흔들어 주나.’

 

1938년에 가수 박단마가 부른 이부풍 작사·형석기 작곡의 ‘맹꽁이 타령(원명 아이고나 요 맹꽁아)’을 박재란이 다시 불러 크게 히트했다. 이뿐이겠는가. ‘강화 도령’과 ‘푸른 날개’ 등을 불러 그녀의 인기는 절정에 이른다. 좋은 노래시에 아름다운 멜로디는 가수의 날개. 그래서인지 지금도 우리 가슴을 젖게 한다.

 

‘두메산골 갈대밭에 등짐지든/강화 도련님, 강화 도련님/도련님, 어쩌다가 이 고생을 하시나요/말도 마라, 사람 팔자 두고 봐야 아느니라/두고 봐야 아느니라. 음지에도 해가 뜨고 때가 오면 꽃도 피듯이/꽃도 피듯이 도련님 운수 좋아/나라님 되시었네, 얼싸좋다, 좋고 좋고 말고/상감마마 되셨구나, 상감마마 되셨구나.’

 

박재란은 조선왕조 말. 철종의 등극을 그린 이서구 작사·전수린 작곡의 사극 드라마 ‘강화 도령’과 유광수 작사·전오승 작곡의 ‘럭키 모닝’ 그리고 하기송 작곡의 ‘둘이서 트위스트’를 부른다. 모두 신바람 나는 흥겨운 노래였다.

 

‘아무리 서러운 슬픔은 많아도/가슴을 털어놓고 노래합시다/하늘도 푸르고 마음도 즐거워/청춘의 푸른 날개여. 날마다 괴로운 시름에 닥쳐도/우리가 서로서로 위로합시다/산 너머 산이요, 강 건너 강이요/젊음의 푸른 날개여.’

 

‘푸른 날개’의 작사가 정성수는 ‘과거를 묻지 마세요’ ‘황금의 눈’ 등 명가요 노래시를 남겼다. 아세아영화사 기획전무이던 그는 ‘스카라 계곡’에서 돈을 팍팍 쓰던 물주. 당시 가요와 영화는 밀월관계였다. 영화음악이나 영화주제가는 가요인의 몫. 그래서인지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영화인들은 대본을 들고 인현동을 찾는다.

 

어느 날, 작곡가 전오승과 작사가 정성수 그리고 반야월은 인현동의 ‘귀신집’에서 술에 만취됐다. 통행금지가 있을 때라 귀가하지 못한 그들은 술집에서 드러눕고 만다. 새벽녘. 소피가 마렵던 정성수는 술이 취한 상태에서 손을 더듬으며 요강을 찾는다. 그러다가 반질반질한 요강에 대고 쏴- 하고 쏟아 낸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급한 목소리로 “아이 뜨거워!” 하면서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곁에서 쓰러져 자던 반야월이었다.

 

훗날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화제가 된다. “그때 전오승도 함께 있었는데, 하필이면 반야월에게 할 게 뭐람? 혹시 감정이 있었던 게 아냐? 제 자랑만 늘어놓는 반야월이 얄미워서….”

 

가수가 우리 민요를 터득하면 빠른 노래도 할 수 있다. 박재란의 감미로운 음색은 민요풍과도 잘 어울린다. 이 때문에 그녀는 한시대를 풍미했던 것이다.

 

‘아나 농부야 말들어 아나 농부야 말들어/서 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큼 남았네/네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에헤야 에헤루야/상사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