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52/문화일보)

해군52 2013. 4. 17. 11:10

‘누가 사랑을…’ 절규같은 후렴에 ‘樂~’… “1980년 同名의 라디오 연속극 대히트”

(52) 배명숙-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조용필은 지금도 그의 많은 팬들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닌다. 작은 거인이 뿜는 폭발적인 가창력 때문이다. 창(唱)에서부터 동요에 이르기까지 조용필의 음악 장르는 넓고 다양하다. ‘정선 아리랑’ ‘오빠 생각’ ‘돌아와요 부산항에’ ‘단발머리’ ‘창밖의 여자’ ‘일편단심 민들레야’ ‘허공’ ‘미워 미워 미워’ ‘비련’ ‘잊기로 했네’ ‘뜻밖의 이별’ 등의 노래들은 절창 그가 아니면 들어볼 수 없는 명가요가 아닌가.

 

오늘 여기서는 그가 맨 처음에 작곡을 하고 불렀던 라디오 연속극 ‘창밖의 여자’를 소개한다.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돌아서 눈 감으면 강물이어라/ 한줄기 바람 되어 거리에 서면/ 그대는 가로등 되어 내 곁에 머무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당시 동아방송(DBS)이 자랑하던 드라마 연출가 안평선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1979년 가을. 동아방송의 연속극 모집에 배명숙의 ‘창밖의 여자’가 당선작으로 뽑혔다. 우선 제목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여자가 왜 창밖에 있나? 무엇 때문에….’

 

안평선은 대학생 때부터 이름을 떨치던 연출계의 베테랑. 그는 이 작품을 놓고 주제가 작사에서부터 작곡, 그리고 노래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기획을 한다. 다행히 주제가 노래시는 훌륭했다. 사랑의 방황 끝에 체험한 진실은 놀라웠다. 신인 여류작가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훌륭했던 것이다.

 

“작곡은 생각해둔 사람이 있었지만, 가수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조용필이 그해 12월 6일자로 방송 활동 금지가 풀렸지요. 그래서 조용필을 떠올린 것입니다. 그의 노래를 나는 아주 좋아했으니까요.”

 

그리하여 안평선은 조용필에게 전화를 한다. 작곡은 누가 했으면 하고….

 

그런데 조용필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 자신이 직접 작곡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그리고 눈도 많이 내렸다. 주제가 취입은 일요일을 택했다. 경기도 벽제에 있는 지구레코드사의 녹음실. 스튜디오 시설은 최신 다채널 녹음기였다. 조용필은 간단히 목을 풀고 연습 녹음에 들어갔다. 조용필의 작곡은 그의 노래 못지않게 전율을 느끼게 했다. 특히 후렴에서 찌르는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의 이 되풀이 반복 부분은 마치 절규 같았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용필이 작곡을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창밖의 여자’는 30회 연속극. 1980년 1월, 첫 방송부터 주제가에 대한 호응도가 컸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로 그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안평선은 주제가를 복사하여 음악프로에 집중적으로 배정했다. 방송국 직원들도 노래를 좋아해 따라 부르곤 했다. 조용필의 작곡 재능과 함께 뛰어난 가창력에 탄복하면서….

 

이렇게 해서 ‘창밖의 여자’는 공전의 히트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조용필의 득음(得音)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경남 삼천포 사람들은 그가 득음하는 광경을 봤다고 한다. 코끼리 바위는 호젓한 바다 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그 당시엔 행인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1960년대 전반기는 지금처럼 TV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갓 개국한 민간 방송국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문화, 동양, 동아방송이 그랬다. 특히 연속 방송극은 당시 라디오시대의 꽃이었다.

 

“임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 긴 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떠나지 않으리라/ 해가 뜨면 달이 가고, 낙엽 지니 눈보라 치네/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편단심 민들레야/ 가시밭길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찾아 왔소….”

 

이 노래 ‘일편단심 민들레야’ 또한 조용필이 작곡하여 그가 부른 것. 얼마나 좋은 노래인가. 조용필은 이 밖에도 ‘단발머리’ 등 많은 작곡으로 주목을 받았다. 조용필 노래는 향기가 난다. 우리 삶의 질곡에서 뿜어내는 듯한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이다. 특히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死別)한 이후, 그의 노래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애틋한 정한(情恨)을 느끼게 한다.

 

“나 그대 알 수가 없네/ 나 그대 믿을 수 없네/ 좋았다가 싫어하니 나는/ 싫어하다 좋아하니 나는/ 그 마음을 어떻게 해서 믿나/ 나 이제는 단념할 거야 ….”

 

1980년에 조용필이 부른 정두수 작사, 김영광 작곡의 ‘잊기로 했네’이다.

 

“사나이 가는 길 앞에/ 웃음만이 있을소냐/ 결심하고 가는 길/ 가로막는 폭풍이 어이 없으랴/ 푸른 희망을 가슴에 움켜 안고/ 떠나온 정든 고향을/ 내 다시 돌아갈 땐/ 열 구비 도는 길마다 꽃잎을 날려 보리라.”

 

남인수가 부른 김초향 작사, 이봉룡 작곡의 ‘해 같은 내 마음’이다. 이 노래를 조용필이 다시 불렀다. 인간 삶에서 우러나는 찡한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