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50/문화일보)

해군52 2013. 4. 3. 22:51

손대면 톡하고 터질것만 같은 풋사랑… 빗속 봉선화 꽃잎 보니 아련히 떠올라

(50) 김동찬-박현진의 ‘봉선화 연정’

 

1988년. 가수 현철이 부른 김동찬 작사, 박현진 작곡의 ‘봉선화 연정’은 그야말로 우리들의 노래가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참으로 정서적인 노래이기 때문이다. 특히 발단 부문에서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봉선화라 부르리…’. 이런 함축성의 백미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원인 제공이 되었던 것이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봉선화는 아련한 추억의 꽃. 소꿉살림을 하면서 손톱에 붉게 물들이던 꽃이 아니던가.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봉선화라 부르리/더 이상 참지 못할 그리움을/가슴 깊이 물들이고/수줍은 너의 고백에 내 가슴 뜨거워/터지는 화산처럼 막을 수 없는/봉선화 연정.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봉선화라 부르리/더 이상 참지 못할 외로움에/가슴 태우네/울면서 혼자 울면서 사랑한다 말해도/무정한 너는 알지 못하네/봉선화 연정.’

 

김동찬이 고등학교 때였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그는 등굣길에서 자주 마주치던 여고생이 있었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봉선화 같이 탐스러운 얼굴에 교복이 꽉 쬐는 몸매는 금세라도 터질 듯했다.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시선은 뜨거워진다. 그러다가 몇 발자국 지나쳐서는 서로가 뒤돌아보고…. 눈길이 마주치면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던 사춘기의 풋풋한 사랑.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어 얼굴을 붉히고…. 가슴이 뛰고….

 

하지만 졸업과 함께 직장을 구하기 위해 서울에 온 김동찬은 흐느적대는 도시의 불빛 속에서 그 소녀를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본디 가수 지망생이지만 거센 세상살이 풍파 속에서 그 꿈을 접었다. 그리하여 간신히 직장을 구해 열심히 다녔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 불씨 하나는 살아 있었던 것. 노래시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었다.

 

작곡가 정민섭을 만나면서 노래시 ‘4월의 사랑’을 정미조의 노래로 발표한다. 이후 ‘사랑의 모닥불’ ‘어차피 떠난 사람’ ‘돌팔매’ 등을 쓰면서 작사가의 꿈을 펼친다. 1980년대 후반기는 김동찬과 박현진의 전성시대. 이 두 사람은 ‘봉선화 연정’을 비롯해 ‘네박자’ 등의 히트로 콤비 작가로서의 명성을 떨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동찬은 화단을 가꾸다가 봉선화 꽃잎을 보게 된다. 비를 머금고 피어나는 봉선화 꽃잎을….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학교 등굣길에서 자주 마주치던 그 여학생.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여고생이 봉선화 꽃잎 속에서 부활했다. 탱자 같이 탱탱하고 싱싱하던 그때 그 여고생이…. 김동찬은 이날밤 ‘봉선화 연정의 노래시를 써서 작곡가 박현진에게 전화로 불러 주었다. 가슴에 와닿는 노래시는 작곡 또한 손쉽게 만들게 하는 것. 박현진은 바로 곡을 붙였다. 노래시 속에 멜로디가 흘렀던 것이다.

 

“여름날에 피는 봉선화는 꽃망울이 진 후, 그 열매를 손으로 ‘톡’ 건드리면 순간 ‘팍’하고 터집니다. 잘 익은 열매는 바람만 불어도 터지지요. 그래서 씨를 퍼뜨리게 되고…. 어쨌건 건드려 주고, 터뜨려 주길 바라는 꽃이 봉선화입니다. 그래서인지 봉선화는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영어 이름을 갖고 있지요.”

 

김동찬의 말이다. ‘봉선화 연정’이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그는 유명해진다. 집도 사게 되고 작사 주문이 쇄도했다. 작사가의 위치를 확고히 다진 것이다.

 

현철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봉선화가 그려진 무대복을 입었다. 열화 같은 팬들의 환호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박현진과 김동찬은 훗날 누가 먼저 죽으면 봉선화 연정의 노래비를 세울 것을 다짐한다.

 

작곡가 박현진은 경북 청송 출생. 그러나 그는 부산에서 성장했다. 노래를 잘하던 박현진은 가수가 되려고 했지만 신체적 조건 때문에 음악을 전공한다. 제 21사단 군악대에서 편곡을 시작으로 ‘봉선화 연정’ ‘네박자’ ‘무조건’ ‘황진이’ ‘있을 때 잘해’ ‘신토불이’ ‘뿌리고’ 등 일련의 히트곡을 발표한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 없는 내 마음/가지 말라고 애원했건만/못 본 채 떠나버린 너/소리쳐 불러도 아무 소용이 없어라/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 없는 내 마음.’

 

김양화 작사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작곡하여 그 자신이 불렀던 현철은 늦깎이 가수. 그러나 ‘사랑은 나비인가봐’ ‘사랑은 별과 같이’ ‘아미새’ ‘사랑의 이름표’ ‘봉선화 연정’ 등을 부르면서 정상에 오른다. 노래 부를 때의 차오르는 감정을 꺾거나 굴리는 창법은 그 특유의 묘미. 작곡도 하는 현철은 우리 가요 산맥에 우뚝 선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