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51/문화일보)

해군52 2013. 4. 10. 11:06

봄비에 숨어버린 남빛바다의 情恨… 고국에 대한 향수 달래는 ‘망향곡’

(51) 가요황제로 등극한 남진의 ‘가슴 아프게’

 

“확 트인 바다. 그리하여 시원하게 우리 가슴을 뚫리게 하는 그런 바다를 보고 싶거든 비오는 날은 피하라. 특히 봄비가 내리는 날엔….” 1966년 어느 봄날. 나는 인천 연안 부두에서 봄비를 맞으며 보이지 않는 바다를 원망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런 날에 찾아오다니….” 마음이 무겁고 허탈해지자 나는 술잔을 연거푸 비웠다.

 

“바다는 그렇다고 하자. 비 땜에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갈매기 떼는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파도소리, 바람소리, 빗소리가 들리는 부두라면….”

 

가수 남진이 부를 노래시가 써지지 않아서인가? 그때 나는 봄비를 탓하고 있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온통 노래시 생각뿐이었다. 이날 내가 연안 부두에 온 것은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순전히 봄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봄비소리를 듣다보면 소생하는 생명들의 숨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낭만, 그리고 서정과 설렘….

 

그래서 이날 나는 아침부터 집에서 뛰쳐나오지 않았는가. 그러다가 봄비에 마음까지 흠뻑 젖어 어느 술집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대낮이라 그 술집은 한산했다. 젊은 여주인이 혼자 라디오 앞에 앉아 열심히 연속극을 듣고 있었다. 무너지듯 의자에 걸터앉은 나는 술과 해장국을 시켜놓고 망연자실해 있었다. 이 무렵은 라디오 시대였다.

 

그때였다. ‘부웅-’하는 뱃고동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두서너 번씩이나….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뱃고동소리는 라디오 연속극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순간 누가 뒤에서 떠밀기라도 하듯 나는 후다닥 그 술집에서 뛰쳐나오고 말았다.

 

연안 부두로 달리는 차에서도 내 눈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남빛 바다가 가슴을 열면서 출렁대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시절 대부분을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보낸 나에게 바다는 늘상 친근감으로 다가섰다. 쾌청한 날은 손에 잡힐 듯 일본 대마도까지 보이던 창망한 물굽이. 가슴이 답답할 때,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가슴이 뚫리면서 가라앉기도 하지 않았던가. 바다가 갑자기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부산은 너무 멀었다. 단숨에 달려가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뱅뱅 도는 이것이 무엇이기에 나를 이토록이나 ‘가슴 아프게’ 하는가.

 

‘가슴 아프게?’

 

그렇다. ‘바다와 나 사이’를 지금까지 짓누르고 있었던 건 봄비가 아니라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가로막고 있었던 거야….’ 달리는 차에서 메모지를 꺼내 나는 단번에 써 내려 갔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메어 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연락선이 없었다면/날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것을/아득히 바다 멀리 떠나가는 연락선을/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그리움만 남겨두고 가버린 사람.’

 

애틋한 우리 삶의 정한(情恨)이 묻어나는 노래라서 그럴까. ‘가슴 아프게’는 빅히트를 한다. 국내는 물론 바다 건너 일본 열도를 달궜다.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에겐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한류(韓流) 제1호의 ‘망향의 노래’였던 것이다.

 

방송·영화출연에 극장공연에 새로 등극한 노래 황제 남진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바빠진다. 누가 말했던가, ‘어느 구름에 비가 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이때 남진의 나이 19세. 한양대 연극영화과 1학년생이었다. 용모처럼 맑고 앳된 목소리의 주인공 김남진(남진의 본명). 그는 타고난 만능 가수다. 정감있는 노래뿐만 아니라 무대를 압도하는 현란한 춤 또한 객석의 팬들을 사로잡는다.

 

나이가 없다. 발랄한 빠른 리듬에 맞춰 흔들어대는 몸짓을 보라.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말이 그저 나온 것이 아니다. 모창(模唱)도 곧잘 해서 전설의 가수 ‘남인수’의 노래며, 허스키 가수 ‘최희준’의 음색을 고스란히 낸다. 뺨칠 만큼 천부적인 탤런트 기질이다. 그는 한때 집으로 들어가지를 못했다. 집에서 그가 귀가하기만을 기다리던 ‘오빠 부대’의 원조 격인 극성팬들 때문에….

 

“늙으면 고향에 가서 살지라우… 목포 친구들과 어울려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는 소년처럼 해맑았다. 나와 함께 한 작품도 수백 편에 이른다.

 

‘가슴 아프게’ ‘우수’ ‘마음이 고와야지’ ‘별아 내 가슴에’ ‘목화 아가씨’ ‘사랑이 스쳐간 상처’ ‘빗속에서 누가 우나’ ‘아랫마을 이뿐이’ ‘젊은 초원’ ‘사랑의 공중전화’ ‘서글픈 종착역’ ‘해바라기 마음’ ‘눈물로 끝난 사랑’ ‘빗속의 연인들’ ‘김포가도’ ‘너를 못 잊어’ ‘철새’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