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56/문화일보)

해군52 2013. 5. 15. 18:09

하늘나라 간 남편 기다리는 새댁의 哀歌… ‘땡! 땡! 땡!’ 마지막 전차의 추억 아련히

(56)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연재 끝>

 

1960년대 초, 서울의 마포는 아직 시골 냄새가 났다. 마포강에는 갈대숲이 우거져 있었고 나룻배도 있었다. 황량한 비행장이 있던 여의도나 남새밭이 널려 있던 말죽거리로 가자면 마포강에서 나룻배로 건너가야만 했다. 한강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을 빼곤 마포나루엔 장어 굽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마포는 또한 ‘땡! 땡! 땡!’을 출발음과 도착음으로 하는 전차의 종점으로 유명했다. 고즈넉이 눈 내리는 겨울밤이나 궂은비가 쏟아지는 여름밤. 더욱이 밤이 늦어 오가는 사람이 없어 약간은 적막할 때 마지막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귀갓길의 남편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오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사람에겐 ‘마지막 전차’가 바로 ‘그리움’이었다.

 

마지막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가난한 대학생 연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 빈한(貧寒)했던 시절. 이때 가정교사는 대학생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부업이기도 했다. 이들은 공원의 벤치에서 사랑의 밀어(密語)를 속삭이다 자장면이나 한 그릇 하면 그날은 그래도 괜찮은 날이었다.

 

이 중 내가 아는 두 연인은, 대학을 졸업하기가 무섭게 마포종점 부근의 허름한 집에 사글셋방을 얻었다. 남자는 다시 박사 코스를 밟으려 밤잠을 설쳤다. 대학연구실이나 대학강사로, 더러는 다시 가정교사도 하며 악착같이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여자도 남편 뒷바라지는 물론, 따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얼마간 가용(家用)을 벌어 썼다. 신혼은 소꿉살림처럼 아기자기했다.

 

여자는 밥을 지어 밥그릇에 담아 따뜻한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두고 이제나저제나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이내 남편 마중을 위해 마포종점으로 나갔다. 남편이 일찍 귀가하는 날이면 둘은 연애시절을 떠올리며 꼬옥 손을 잡고 인근 당인리로 이어지는 긴 둑을 걸었다. 원효로 전차종점에 이르기까지 거닐기도 했다. 그때 당인리의 깜빡대는 불빛은 바로 어릴 적 반딧불만큼이나 눈물나게 반가운 것이었다.

 

당시 나는 마포종점 부근에 살면서 작곡가 박춘석 씨와 함께 거의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가수들의 노래 작품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곧바로 마포 설렁탕집을 찾았다. 마포종점에 있는 이 설렁탕집은 예술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

 

어느 날 나는 설렁탕집 주인으로부터 마포종점에 살던 두 연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편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있던 중 너무 과로한 나머지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만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남편을 졸지에 잃은 여인은 늦은 밤이면 신혼 초 사글셋방 시절처럼 마포종점에 나갔다. 그곳을 미친 듯 배회하며 남편을 기다렸지만 한 번 간 남편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결국 그 여인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 언젠가부터는 마포종점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1966년 그해 여름. 나는 궂은비를 맞으면서 마포 전차종점에 나가 마지막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땡! 땡! 땡!’ 도착음을 내면서 밤 늦은 시간에 전차는 들어오고 있었다. 궂은 비를 맞으면서…. 이날 밤 나는 밤잠을 설치면서 애절한 두 연인들의 사랑을 담은 ‘마포종점’의 노래시를 썼다. 두 연인의 이야기는 한 편의 애틋한 애가(哀歌)였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여의도 비행장에 불빛만 쓸쓸한데/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한들 무엇하나/궂은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1967년 봄, 이 노래 ‘마포종점’은 여성 듀엣 ‘은방울자매(박애경·김향미)’의 목소리에 실려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이 노래가 나온 지 1년 후, ‘마포종점’은 사라지고 만다. 특유의 금속성 음을 뿌리며 ‘서민의 애환’을 실어 나르던 전차(電車)가 세월에 밀려 퇴장하고 말았던 것. 큰 방울 박애경은 이 노래를 부를 때 만삭이었다. 그래서인지 ‘마포종점’은 대박이 났다. 국민 애창 가요로서….

 

그리고 듀엣의 한 사람인 ‘김향미’는 결혼에 실패해 지금은 캐나다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큰 방울 ‘박애경’ 또한 지병으로 눈을 감게 되고…. 나는 이곳에 오면 은방울자매 말고도 또 한 사람의 가수를 생각한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 그는 나의 노래시 ‘종착역’을 받아 연습하다가 홀연히 가버렸기 때문. 마포나루에서의 그와의 추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얼마 전 나는 한 언론인과 함께 그 옛날 마포종점 부근의 설렁탕집을 찾았다. 전차 차고가 있던 그 자리에 세워진 빛바랜 ‘마포종점’의 노래비에서 노래에 얽힌 비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이뤄진 것이었다. 이 노래비는 마포구 도화동 어린이공원에 세워져 있다. 나룻배도, 전차도, 설렁탕집 주인도 간 곳이 없었다. 마치 우리들의 젊은 시절처럼…. 늘 하는 말로 참으로 ‘인생무상(人生無常)’ ‘세월무상(歲月無常)’이었다. 그 여인, 마포종점을 헤매던 그 여인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에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