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캄보디아는 수십년 동안의 혼란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원시적인 나라로 전락하게 됩니다
독립-->시아누크에 의한 왕정-->미 육사 출신 론놀의 쿠데타
(이후 시아누크는 북한으로 망명, 김일성과 호형호제하였음)
-->폴 포트 크메르루즈 공산정권-->베트남의 지배
-->내전과 혼란-->(현재) 훈센의 집권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까지 통치하던 크메르루즈 공산정권은
극좌정책 시행으로 모든 사람들은 공동생활을 하게 했는데,
남녀를 분리하고 아이들도 독립된 생활을 하도록 하여
자연스럽게 과거의 가족 관념을 해체시키게 하였습니다
또 크메르루즈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집단수용소로 만들고
전직 군인, 공무원, 부자, 지식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고
기아, 중노동, 질병까지 200만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가며
전대미문의 민족 대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일단 기관에 끌려가기만 하면
죄가 있든 없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죄가 있는 다른 사람 3명의 이름을 댈 때까지 나오지 못했는데
그것도 살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나오는 것이었다고 하니
그 안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할만 합니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잔혹하게 죽였다고 하는데
(상세한 내용은 차마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동족끼리 그렇게 잔인할 수 있었는지,
대학살 작업(?)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이 엄청 많았을텐데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에 동참할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의 참상은 영화 <킬링필드>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한 참살의 현장 증거는 할 말을 잃게 합니다
사원 안에 있는 흰색 건물에 다가서면 아래의 모습이 보입니다
씨엠립 그 작은 도시에서 발굴한 300구 정도의 유해를
사원 안에 작은 건물을 짓고 그 안에 모아놓았는데
유리문을 통해 훤하게 드려다 보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런 대학살의 결과로 지식층이 대거 없어졌고
남녀 인구비율에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되어
일시적으로 한 남자가 부인을 4명까지 두는
일부다처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려면 남자가 신부 몸값을 지불한다는데
좋은 신부감이면 몸값이 5천~1만 달러라고 합니다
어느 일본 남자가 캄보디아 여자와 44번이나 결혼을 해서
이 분야의 비공인 기록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매번 제대로 된 결혼식을 했다고 하니
그 남자에게는 결혼이 취미활동인가 봅니다
우리 일행을 보고 따라다니는 아이들에게
비행기에서 가져온 빵이나 과자를 주면 허겁지겁 잘 먹는데
미군을 쫓아다니면서 껌이나 초콜렛을 구걸하던
우리의 지난 시절이 떠올라서 사진을 찍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나부끼는 깃발이나 정치구호도 모두 허망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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