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창인 등산의 고수가 주관하는 등산모임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토요일 오전에도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토요일 오후2시, 구기동 냉면집 출발, 사자능선을 거쳐
보현봉과 대남문을 찍고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일체의 연락 없이, 그 시간에 온 친구들끼리 등산하고
간단하게 맥주 한잔만 하고 바로 헤어지는 모임이었다
내가 이 모임에 처음 참석했던 날은 거의 악몽이었다
리더인 친구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설렁설렁 걸었고,
다른 친구들은 부지런히 쫓아갔고, 나는 네 발로 기었다^^
해군 장교 훈련 이후 이런 빡센 움직임은 처음이었다
오기 발동, 이런 미친 짓(?)을 매주 반복하기 열 번쯤?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숨막힘과 다리 통증이 사라지고,
그 대신 온몸에 나른하고 기분좋은 피곤함이 찾아왔다
나의 등산은 40대 중반 북한산에서 이렇게 시작되었다
코스는 북한산 주능선, 의상능선, 사패능선으로 넓어졌고,
매달 한번씩 지리산, 설악산 등 원거리 등산에 나섰다
원거리 등산은 보통 아주 빡세게 15시간 이상이었다
나는 우리 등산팀을 ‘124군 부대’라고 불렀다
10년 이상 지속되던 팀은 이탈자 속출로 해체되었지만
나는 그 후에도 혼자만의 산행을 꽤 오래 지속해 왔다
등산을 시작할 때 동년배 건강순위에서 50% 선이었다면,
10년 후 30% 이내, 지금 20% 이내일 것으로 짐작한다
중년 이후 나의 건강을 지켜준 것은 99% 등산이었고,
그 시작에는 바로 북한산과의 이런 만남이 있었다
한동안 북한산 가는 날을 애인 만나기만큼 기다렸고,
그날이 오면 신들린 것처럼 북한산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니 북한산은 나의 등산경력에서 첫사랑인 셈이다
지금도 광화문에서 경복궁 너머로 보현봉을 바라보면
첫사랑에 가슴 설레던 젊은(?)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장은숙 <당신의 첫사랑> 노래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y4pkC9f4jC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