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 정호승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내 신발이 말했다
발아, 미안하다
내 발도 말했다
신발아, 괜찮아?
너도 참 아프지?
등산이나 도보여행을 종종 무리하게 다니다 보니
발에 물집 잡히거나 뒤꿈치 까진 건 부지기수이고,
피멍 들었던 발톱이 빠진 게 벌써 몇 번인지 모른다
그럴 때면 내 발을 만지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내 발이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하네’, 뭐 이런...^^
험하게 다녀야 직성이 풀리던 질풍노도의 시절이
지난 어느 날 내 발을 들여다보니 너무 거칠었다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해서
한동안 내 발에 크림을 발라가며 마사지를 했다
애기 발처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지만
그런 꿈을 실현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는지
마르고 갈라졌던 뒤꿈치만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내 발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신발의 상황도 비슷하다
신발의 근무 시간이 특별히 긴 것은 아니겠지만
근무의 강도로 따지자면 좀 센 편이기는 하다
시인의 시에서처럼 동병상련하던 내 발과 신발이
어느 날 손잡고 동맹 파업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바람 속에 몇 시간 걷고 돌아온 오늘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