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따라

길을 묻다

해군52 2020. 6. 9. 10:48

길을 묻다 - 이인수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세상의 길들을 만난다.

갈래 난 사람의 길

은밀한 짐승의 길

하늘로 향하는

나무들의 꼿꼿한 길,

문득 걸음 멈추고

뒤돌아 본 나의 길은

비뚤비뚤 비딱하다.

어디로 가야할까,

아직 봉우리는 아득한데

어디로 가야할까,

겨울 산 비탈에서

다시 길을 묻는다.

 

길을 걷는다고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간혹 힘든 정도를 넘어서 괴로움의 연속일 때가 있다

 

오래 전이지만 내게 그런 암울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가 가는 길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고

멈춤과 탈출 버튼을 누르고 싶은 유혹이 너무도 컸다

 

어느 분에게 물어보았다, 내 앞길이 계속 이런 거냐고!

그 분은 아니라고 하면서 잘 익은 사과 한 알을 주었다

그 사과를 껍질 채 먹은 덕분인지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그분은 이미 고인이 되었으니 이제 만나 볼 수도 없고

그때 내 앞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더 이상 길에서 길을 묻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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