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드 버그만 Ingrid Bergman (1915~1982) 스웨덴 배우
스톡홀름에서 스웨덴인 부친과 독일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잉그리드 버그만은 3살에 모친이, 13살에 부친마저 별세하자
숙부 집에서 자랐는데 스웨덴 왕립 드라마스쿨에 입학했다가
자퇴한 후 스웨덴과 독일 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스웨덴 영화 <인터메조>(1936)에 출연한 그녀를 본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리메이크작 <인터메조>(1939)로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한동안 고전하던 그녀는 <카사블랑카>(1942)로 일약 세계적
스타로 급부상한 이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가스등>(1944)으로 수상까지
이어지면서 할리우드에서 세계 정상급 여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성 메리 성당의 종>(1945)과 <잔 다르크>(1948)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후에 <스펠바운드>(1945),
<오명>(1946),<염소좌 아래에서>(1949) 등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작품에 연속 출연하며 194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에 감동받은
버그만은 그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고, 결국
로셀리니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당시 기혼자였던
두 사람이 영화뿐 아니라 실제 사랑에 빠져서 파문이 일었다
불륜이 흔하던 할리우드였지만 청순한 이미지로 크게 사랑을
받았던 외국 여배우가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해준 할리우드와
히치콕 감독을 떠나 이탈리아 감독을 쫓아간 행동은 용서받기
어려웠고, 버그만은 비난을 받으면서 할리우드를 떠나야 했다
이후 버그만은 <아나스타샤>(1956)에 출연하여 아카데미에서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6년 만에 미국 복귀에 성공했다
175cm의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에 5개 국어를 구사한 그녀는
여러 나라의 영화 50여편에 출연하여 아카데미에서 7회 후보,
여우주연상을 2회, 여우조연상을 1회 수상했고, 에미상을 2회
수상, 토니상을 1회 수상해 연기자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출연 51편/영화제 수상 41회, 후보 20회
카사블랑카 (194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43)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가스등 (1944)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스펠바운드 (1945) 베니스비엔날레 주연상
성 메리 성당의 종 (1945)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오명 (1946)
잔 다르크 (1948)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유로파 51 (1952) 베니스 볼피컵 주연상
아나스타샤 (1956)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이수 (1961)
오리엔트특급 살인 (1974)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가을 소나타 (1978)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추모 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sJ12bi9iW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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