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아침음악

2024.0724

해군52 2024. 7. 27. 14:13

✱아침을 여는 음악 7월 24일(수)✱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먼저 간 갑장(甲長) ‘친구’ 

      ◀친구 
         ◼도비두(김민기✕김영세)
      ◀아름다운 사람 
         ◼현경과 영애 
      ◀늙은 군인의 노래 
         ◼김민기 
      ◀상록수 
         ◼양희은 
      ◀공장의 불빛 
         ◼권진원 
      ◀기다림 
         ◼‘지하철 1호선’ 앙상블 
      ◀이등병의 편지
         ◼김광석 
      ◀봉우리 
         ◼김민기

◉같은 시대를 살았던 
동갑내기 가수 김민기가 
한발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오늘  
후반기 삶의 터전이었던 
대학로 소극장 
‘학전(學田)’을 들린 뒤  
새 보금자리에서 편안히 
잠들게 됩니다.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그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그의 73년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할 만큼 다 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김민기는 자신 생각과 
판단에 따라 열심히 살아온
가객(歌客)입니다.
노래를 접어둔 뒤에는 
남을 돋보이게 만드는 
‘뒤 것’ 삶을 살았습니다. 
정치적 견해를 
밝힌 적도 없고 
민중가요나 운동권 노래를 
의식하고 만들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본 대로 느낀 대로 
그려 놓은 노래들에 
사람들이 그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1970년대 
정치 상황과 맞물려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내렸습니다. 
민주화 시위 현장에
끊임없이 등장했던  
‘아침이슬’이 그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가장 먼저 알았던 
김민기의 노래가 
‘친구’입니다.
아침이슬과 함께 
그의 1집 앨범에 
실렸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세련된 화음과 
풍부한 노랫말 때문에 
한국 모던 포크의 
대표곡으로 꼽힙니다. 
김민기가 경기고등학교 
3학년 때 만든 노래입니다. 
동기들보다 한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갔던 김민기가  
열여덟 살에 이런 노래를 
만들 정도면 그의 음악적 
감각과 재능을 충분히 
인정할 만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스카우트 대원들과 
동해로 야영 갔다가 
후배 한 명이 물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선임자였던 김민기가 
후배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야간열차를 타고 
상경하는 길에 
즉석에서 만든 노래가 
바로 ‘친구’입니다.
나중에 이 노래가 
시위 현장에서 숨진 학생을 
추모하는 민중가요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순전히 김민기가 만든 
노래라는 후광효과가 
가져온 현상이었습니다.

◉서울대 미대에 진학한 
김민기는 한 학기 만에 
붓을 꺾고 
기타를 집어 듭니다.
고교동기인 김영세와 
‘도비두’라는 듀엣 포크팀을 
만들어 노래 활동을 
시작합니다.
김영세는 나중에 전공으로 돌아가 
산업 디자이너 회사 대표이자 
대학교 석좌교수까지 됩니다. 
그는 함께했던 친구 김민기는 
음악적 천재였다고 회고합니다. 
‘도깨비 두 마리’를 의미하는 
‘도비두’가 부르는 
‘친구’를 만나봅니다. 
https://youtu.be/T6GBzdiHBlU?si=nL-cvJWpukE6VuLa

◉김민기는 그가 만든 
노래의 제목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불러도 
좋을 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려움과 고난도 겪었지만 
특히 다른 예술인을 위해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니 
그렇게 부를만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먼저 
알았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대학로 소극장 학전 운영과 
함께 자신의 삶을 ‘뒤 것’
인생이라고 불렀지만  
주변을 챙겨서 빛을 나게 
만드는 김민기의 기질은 
원래부터 가진 성향이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서울미대 후배인 
포크 듀오 ‘현경과 영애’에 
대한 배려는 남달랐습니다. 
김민기는 이들의 방송 출연을 
주선하는가 하면 
자신이 작사 작곡한 
‘아름다운 사람’을 
부르게 했습니다.
지금은 친구의 아내가 된 
현경은 1970년대 초 
‘민기 형이 준 노래’라며 
이 노래를 들고 와서 
친구의 수유리 하숙방에서 
친구 병기의 기타에 맞춰 
이 노래를 함께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 쿄토에 살고 있는 현경은 
‘민기 형’의 타계 소식에
지금 마음 아파할 것입니다. 
현경과 영애가 부르는 
추모 노래로 듣습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 노래라고 김민기가 
칭찬했던 현경과 영애의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1절은 이현경이, 
2절은 박영애가 
3절은 현경과 영애가 
함께 부릅니다. 
https://youtu.be/ySGEO3SH-Sc?si=H1UytoY0mMayX4YY

◉1974년 김민기는 
미군 부대 근무 카투사로
입대합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노래들이 
문제가 돼 조사받고 
최전방 원통으로 전출됩니다.
여기서 그는 30년 복무하고 
전역을 앞둔 선임하사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그래서 동료 회식용으로 
막걸리 두말을 받고 
만든 노래가 바로 
‘늙은 군인의 노래’입니다. 

◉젊은 청춘을 군에서 바친
회한과 아쉬움에 
나라를 사랑하는 소박한
마음을 담아 만든 노래입니다.
병사들의 구전으로 알려졌던 
노래는 제대 후 1978년
양희은이 취입했지만
패배주의 적 가사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나라 사랑 노래로 인정받고
현충일 추념식에도 등장하는 
노래가 됐습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위상도 
달라진 이 노래를 
낮게 읊조리는 듯한 
김민기의 노래로 들어봅니다. 
https://youtu.be/xahy5ZApOnc?si=Y2jFpw6_bk3XjtWq

◉제대 후 김민기는 
선배의 도움으로 
부평의 한 봉제 공장에서
재고관리 업무를 맡아 일합니다. 
그때 만들어진 또 하나의
대표곡이 ‘상록수’입니다.
이 노래는 김민기가 
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만들었던 노래입니다. 
힘든 노동자 생활이지만
부부가 함께 손잡고 
어려움을 잘 견뎌내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달라는 
마음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진 것이 적지만 
손잡고 이겨나가자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당시 노동자 부부들에게는
친하게 지내던 송창식이 만든 
노래라고 둘러댔다고 합니다.  

◉김민기가 대학에 들어간 뒤 
수유리 형의 집에서 보이는 
공동묘지를 보고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고 묘사한 
‘아침 이슬’ 가사가 
금지곡의 빌미가 되면서 
이 노래가 대표적인 
저항가요가 됩니다. 
또 하나의 저항가요로 
불리는 상록수도 당초 
의도와 달리 
나중에 시위 현장에서 
저항가요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IMF 사태와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이 노래는 
희망과 의지를 나타내는 
건전한 힐링 가요로 
또 한차례 변신합니다.
김민기의 초등학교 1년 후배로 
‘아침이슬’을 불렀던 
양희은이 이 노래도 부릅니다. 
https://youtu.be/8EHNqlTyv64?si=NTi5ID9OjT6Pqn8Q

◉유신 말기인 1978년에 
김민기가 연출한 ‘노래굿’ 
‘공장의 불빛’은 
대중 확산력이 강한 
카세트테이프를 매체로 활용해 
금지된 음악을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김민기가 만든 21곡의 노래가 
2천여 개의 카세트테이프로
제작돼 대중들 사이에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당시 녹음은 김민기와 친한 
송창식의 녹음실에서 했습니다. 
소리의 외부 유출을 막기위해 
창문을 담요로 싸고 녹음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노동자로, 농부로 일하면서 
현장 상황에 충실했던 
김민기는 1991년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새로운 
일터로 잡으면서 새로운 
2막 인생을 살게 됩니다. 
2021년 ‘아침이슬 50주년 
김민기 트리뷰트’에서 
권진원이 김민기에게 
헌정하는 노래 ‘
‘공장의 불빛’입니다. 
https://youtu.be/ZG4v_Zx-3-w?si=FbbTSQpgGoBB5X-i

◉1991년 김민기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연출을 맡으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이 뮤지컬은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가 
각본을 맡고 
비르거 하이만 작곡한 
록 뮤지컬입니다.
이 뮤지컬은 김민기가 
사비를 들여 개관한 학전에서 
2008년까지 4천 회나 
공연됐습니다.
그 공으로 김민기는 
독일 정부로부터 2007년 
괴테 메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윤이상, 백남준에 이은 
세 번째 메달이었습니다.
계속된 공연은 올해 3월 
학전이 문을 닫을 때까지
8천 회 공연에, 
7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김민기는 지난 2008년 
4천 회 공연을 학전 역사에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1991년 이후 김민기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인터뷰나 공연 섭외를 모두 
거절했습니다.
자신은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를 시도하면서 
살아가는데 ‘아침이슬’로 
자신을 기억하는 화석화된 
김민기가 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뒤에서 돕는 보조 인물 
스태프를 자처하며 
‘뒤 것’이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며 스타로 만들어 낸 
‘앞 것’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대 스타가 된 
독수리 5형제로 부르는
설경구, 황정민, 김윤식, 
조승우, 장현성이 바로 
대표적인 ‘앞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스타들이 
대거 배출됐습니다. 
‘김민기의 연출 없는 
지하철 1호선은 없다’라는 
유족들의 말대로라면 
더 이상 보기 쉽지 않아진 
뮤지컬입니다.
‘지하철 1호선 뮤지컬 속 
앙상블의 노래와 공연을 
만나보고 갑니다. 
‘기다림’입니다. 
https://youtu.be/DeXVQeNNfyg?si=PEurJYD1ZYv5oZvh

◉학전이 배출한 뮤지션도 
적지 않습니다. 
정재일 나윤선 윤도현 등이 
여기에서 음악적 바탕을 
닦았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가수가 
바로 故김광석입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패로 김민기를 만났던 
김광석은 죽기 전까지 
8년 동안 천 회에 걸쳐 
학전공연을 이끌었습니다.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김민기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줬습니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뒤
김민기는 추모회 회장을 맡아
‘김광석 다시 부르기’ 등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이 오랜만에 
하늘에서 만나면 
나눌 얘기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원래 전인권이 부르려던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김민기가 김광석에게 
맞는다며 부르도록 해서 
김광석의 노래가 됐습니다.  https://youtu.be/JMkl1NZ1Zjk?si=IvTnZrUzOzv59YiN

◉김민기는 노래 부르는 
모습을 잘 보여 주지 않는 
가수였습니다. 
학전에서도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조용필과 만났을 때 
노래방에서 조용필이 열곡을 
부를 동안 단 한 곡의
답가도 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김민기는 자신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을 만드는 데 맞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노래 부르는 영상은 
거의 찾을수가 없습니다.

◉본인은 낮은 목소리를 
불만스러워하지만 
이야기하듯 흐르는 
그의 말과 노래는 
듣는 사람이 공감대를 이루며 
젖어 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서정적이고 
따뜻한 노랫말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올리는 ‘봉우리’가
바로 그런 노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레 33회 하계올림픽이
파리에서 열립니다.
206개 나라 만 71명의 
선수들이 32개 종목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경쟁하게 됩니다.
최고의 봉우리에 오르면 
금메달을 따게 되지만 
대부분 봉우리에 오르지 
못하고 중도 탈락합니다.
40년 전 LA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고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작가는 송지나였고 
김민기가 만든 이 다큐의
주제가가 바로  
‘봉우리’였습니다. 

◉김민기가 풀어가는 
‘봉우리’의 이야기에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진심을 담은 소외자에 대한 
배려가 잔잔하게 
깔려 있습니다.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인지 몰라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https://youtu.be/3DMQc76GfzQ?si=IU3TbjElGWh9y1wp

◉봉우리를 오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김민기는
자신이 오를 봉우리는 
여기까지라고 
얘기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모두들 지금 오른 
봉우리에서 긴장을 풀고 
주위를 돌아보면서 
가까이 있는 것을 보듬고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이 
그의 마음처럼 인지도 
모릅니다.
 
◉높은 봉우리에 오르려고 
기를 쓰지 않고 
항상 고만고만한 고개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김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뜻괴 
상관없이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떠나는 그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배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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