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아라라트산 (2023.0611)

해군52 2026. 8. 8. 10:39

아르메니아에서 버스는 튀르키에와의 국경을 향해 달린다.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이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는 아라라트. 아르메니아인들의 뿌리이자 영혼이지만 지금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다. ‘가거라 삼팔선을 목 놓아 부르는 우리네 실향민의 처지와 비슷하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언덕 위 십자가와 국기 너머로 아라라트산이 조금 더 가깝게 보이고 아래쪽으로는 마치 요새 같은 작은 예배당이 보인다,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하게 만든 계몽자 성 그레고리13년 동안 갇혀 있던 우물 감옥과 그 위에 세워진 코 비랍 수도원이다

아르메니아 신화에 따르면 민족의 시조가 이 산 주변에 나라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민족의 영혼이자 정체성의 중심이다. 또한 아라라트는 구약성경에 따르면 대홍수 이후 '노아의 방주'가 머물던 곳이니 서기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아르메니아에서 신앙의 뿌리이기도 하다.

 

원래 이 산 주변은 수천 년 동안 아르메니아인들이 살던 터전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현 튀르키에)은 제국 내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을 잠재적 적국인 러시아의 동조자로 간주하여 강제 이주 및 대규모 학살을 감행했고, 이때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추방당했다고 한다.

 

전쟁 직후 아르메니아는 잠시 독립했다가 소련의 일원이 되었는데 소련은 1921년 서방 견제를 위해 아라라트산을 포함한 아르메니아 영토 일부를 튀르키에에 넘겨주었다. 튀르키에는 이 산을 철저하게 자국 영토로 관리하면서 안보상의 이유로 오랫동안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다가 최근 들어서야 제한적으로 관광 및 등반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한 아르메니아는 국장 한가운데에 아라라트산과 노아의 방주를 그려 넣고, 맥주와 브랜디에도 그 이름을 넣고 있지만 튀르키에와의 국경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으니 신의 구원을 상징하는 거룩한 아라라트산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향이다.

 

그동안 많은 탐험가, 종교학자, 고고학자들이 방주의 흔적을 찾으려고 탐사에 나섰고, 항공 촬영이나 위성사진을 통해 방주 모양의 지형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지질학자들은 홍수로 인해 형성된 자연적인 지형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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