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면 알지 못하던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어떤 만남은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하고
다른 어떤 만남은 나쁜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이번 4박5일 동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 중에 압권은
내가 공개적으로 <엽기녀>라 부른 바로 그 여자분이다
그분은 여행내내 기발한 행동과 튀는 발언으로 일행을 줄겁게 했는데
엽기성이 비교적 작은 에피소드 몇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장춘-연길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자분이
기내에서 받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댔던 컵의 반대쪽을 내게 내밀면서 마셔보라고 한다
<너무 맛이 없어서 못 마시겠어요!>
(아니, 맛이 없으면 안 마시면 그만이지
나보고 마셔 보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한모금 마셔 보니까 정말 맛이 이상하긴 하다
그분은 첫날 저녁 식탁에서 백주로 주량을 과시하더니
여행 신청 전에 남편한테 <백두산> 가겠다고 했었는데
정작 남편은 <백두대간>으로 들었었다고 한다
백두산 종주 도중에 갑자기 배낭을 내려놓고
벼랑쪽으로 엎드리면서 <절대 붙잡지 말라>고 하더니
벼랑끝에 있는 산양귀비라는 노란 꽃을 따온다
나보고 더 바깥 쪽에 있는 한 송이를 마저 따 보라고 한다
<나는 그만 일에 목숨 걸기 싫은데요!>
천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는 남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때 밀어요? 등 밀어줘요?>
백운봉 정상에서 점심 먹으면서 위스키와 소주를 한잔씩 마시다가
가이드가 뱀술을 들고 오니까 즉각 반응이 온다
<한잔 주세요!>
한잔을 마시더니 이번에는
<뱀술이 아니라 더덕술 같은데 한잔만 더!>
뱀술을 거푸 두잔 마시고 나더니 이런 말을 한다
<오늘 뱀술 두잔이나 마셨으니 이틀후 남편은 죽었다!>
넓은 초원으로 나오자 즉시 노래가 시작된다
<에델바이스~~>
<푸른 초원에 배낭을 메고~>
그러더니 갑자기 등산화를 벗어들고 맨발로 간다
<맨발로 가면 얼마나 시원한데, 한번 해봐요!>
몇 명이 따라서 맨발로 간다
나도 해 보니까 시원하긴 정말 시원하다
백두산 종주 마지막 구간에서 일행과 헤어진 엽기녀 포함 4명이
길을 잘못들어서 장백폭포 아래 계곡쪽으로 내려갔는데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차기도 하고 무릎 깊이는 되는데
뒤돌아서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해서
건너편에서는 현지인들이 건너면 안 된다는 사인을 보내는데도
계곡물을 헤치며 그냥 건너서 내려 왔단다
이러다 잡혀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에 물이 차가운 줄도 몰랐다는데
무용담을 들어보니 잡혀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갈 뻔한 상황이다
백두산을 떠나 용정으로 가는 버스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뒤에 올라오는 남자들을 옆에 앉으라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두 뿌리치고 뒤로 가버린다
이럴 때 내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자진해서 옆자리에 앉는다
버스 안에서 소주를 한잔씩 하면서 한동안 얘기를 들었는데
결혼하고 얼마후 전라도 땅끝마을에 혼자 가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절대 못 가게 하더란다
그래서 그냥 혼자 땅끝까지 가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어디 가겠다고 하면 그냥 오케이란다
지방 문예지에 글을 쓰고 강의도 하고 등산이나 여행도 하고...
연길 해당화 식당에서 종업원들이 무대에서
<우리의 소원> 노래를 부르니까 무대로 쫓아나가는데
나가려면 혼자 나가지 남자 일행 한명을 억지로 끌고 나간다
나중에 그 남자분한테 들었는데
팔힘이 얼마나 센지 뿌리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 날 자정이 다 되어서야 호텔에 들어갔는데
그 시간에 술마시러 나가자고 한다
그동안의 피로도 쌓이고 워낙 늦은 시간이라
유혹을 물리치고 그냥 잤더니
호텔 방에서 여자 일행들끼리 맥주로 때웠다고 한다
장춘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공교롭게도 또 내 옆자리에 앉는다
짐에 술2병이 들었다면서 통관 걱정을 하길래
무슨 술이냐고 물었더니 백주라고 한다
선물할 거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마실 거라고 한다
백두산 종주를 했으니 이제 어느 산을 가야 하나 걱정(?)했더니
내년에 안나푸르나나 카일라스 가보려고 하는데
또 즐거운 산행의 동무가 되어주겠다고 하면서
카일라스는 생명을 책임지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엽기녀 그분 때문에 조금은 황당했지만 재미있기도 했는데
내가 대놓고 <엽기녀>라고 불러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분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은 이러했다
<자유를 느끼고자 그리 한 겁니다
그 먼데까지 비싼 돈 주고 가서 억압된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어서였죠>
이거 맞는 말이다
초원에서 맨발로 걷던 기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세상으로부터 일탈되는 희열...
도덕적인 것을 논하기 전에 자유에 이입되는 기분....>
이 또한 공감하는 말이다
男이든 女든 상관없이 누구든지
누가 뭐라 해도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삶의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은
보기도 좋고 부럽기도 하다
비록 다소 엽기적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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