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

조선족을 생각하며 (백두산 여행기-20/2002.0913)

해군52 2002. 9. 13. 08:47

<한국혼인수속

현재 한국에 거주중인 중국 여성(미혼, 리혼 또는 배우자 사망)과

한국 남성 사이의 결혼 수속을 한국내에서 해 드립니다

전화 0433-2550*** 핸드폰 298***>

 

용정 거리의 어느 가게 유리창에 붙어있는 광고물처럼

많은 조선족 젊은 여자들이 이런 일로도 한국으로 가고

돈을 벌러 중국내 대도시나 한국으로 떠나기 때문에

연변에는 젊은 여자 보기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연변 출신 여자들이 송금하는 돈이 연간 3억달러로

연변의 재정수입보다 많은 금액이라고 하니

조선족 여인들은 연변 경제발전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당연히 연변 총각들은 결혼하기도 힘들고

조선족 출산율이 떨어져서 인구는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한다

 

게다가 연변이 다른 지역에 비해 잘 산다는 소문 때문에

남쪽으로부터 한족들이 대거 이주해 오기도 해서

한때 60%를 넘던 조선족 인구비율이 40% 아래로 줄어들었다

 

이러다가 소수민족 자치주 성립에 필요한 25% 아래로 떨어져서

조선족 자치주의 성립 기반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한다

 

중국 조선족들은 재일교포나 미국 교민들과는 달리

민족의식이 상당히 강하고 우리 언어와 문화를 잘 지켜오고 있다

 

길에서 조선족과 한족이 싸우고 있으면 무조건 조선족 편을 들고

자녀를 조선학교에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녀가 한족과 결혼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고

특유의 부지런함과 억척스러움으로

중국내에서 가장 잘 사는 소수민족이 되었다

 

조선족들은 조선말기~일제지배기 동안

먹고 살 길을 찾아서 또는 독립운동을 위해서

한반도에서 옮겨간 분들의 후손들이 대다수이니까

3~4대쯤 위로 올라가면 모두 이땅에서 함께 살던

같은 형제, 같은 이웃들이었다

 

몇 년전 박모라는 조선족 청년을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증조부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독립문 형무소에서 옥사하셨다고 한다

증조부의 활동에 관한 자료나 증언들을 모두 모아서

정부에 제출하고 국가유공자로 확인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 일이 쉽지 않더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체류기간이 지나서 불법체류자가 되었고

불심검문에 걸려 강제출국 당하고 말았는데

다시는 한국에 안 가겠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명확한 증거자료가 없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경찰서에서 아무리 그런 사정 얘기를 해도

중국에서 온 조선족들은 다 그런 소리를 한다면서

그저 불법체류자의 헛소리로 무시해 버리고

범죄자로 몰아 추방하고 만 나라를

어떻게 조국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또 환자 간병을 하고 있는 한 조선족 아주머니의 사연인즉

어렵게 한국에 와서 어느 집에서 1년동안 간병을 했는데

첫달은 월급을 주더니 나머지는 안 주더라는 것이었다

월급 달라고 하면 불법체류자로 고발하겠다고 협박을 해서

하는수 없이 열달 이상 무료봉사를 했다는데

너무 억울해서 경찰에 고발을 했지만

그 집 주인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처벌도 안 되고

월급도 더 이상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연변에 가서 돈푼이나 있다고 잘난척하고

그분들을 무시하고, 허황한 약속이나 하고, 사기치고...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번 여행길에 연변 조선족들을 보면서 여러번 반성을 해야 했다

 

<조선족 중에는 일제때 연길이나 용정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의 후손들이 많이 있는데

나는 이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었나?>

 

국가정책적 차원에서 이분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는

물론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분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야 하겠다

 

그분들의 국적이야 중국이지만 틀림없이 우리 동포들이고

만주 벌판을 누비며 독립운동하던 분들의 후손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