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한강에서 썰매를 타거나 걸어서 건너다니던 시절,
그 춥고 기나긴 겨울을 나기 위해 어른들이야 걱정이 많았겠지만
어린 마음에는 그런 겨울도 그저 즐겁기만 한 시절이었다
요즈음 겨울 추위라고 해야 겨우 영하 몇도로 한 자리 숫자에 그치고,
게다가 삼한사온도 아닌 일한십온 정도로 겨우 며칠이면 끝나버리니
추위에 비교적 잘 견디는 나는 그 시절의 강추위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일기예보에서 강추위를 예보하면 은근히 기대하다가 실망하기를 반복,
이제는 아예 매섭게 추운 겨울은 없어진 것이라고 단념한지 오래되었다
내가 벌써 여러해 동안 겨울이면 한번씩 태백산을 찾아가는 까닭은
예로부터 민족의 영산이자 단군께 제를 올리던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겨울의 살을 애는 듯 매서운 바람과 눈이 만들어주는 경치 때문이다
올 겨울에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눈꽃축제마저 끝나버리고 나서야
겨울 태백산행의 막차라도 타야겠다는 마음으로 태백으로 향한다
서울 날씨를 보면 혹시 철쭉꽃이 피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하면서...
내가 생각해도 성격 참 이상하다^^
그래도 기차를 타는 마음은 즐거웠고 산을 향한 설레임은 여전하다
동행할 친구들 명단을 보니 술꾼들이 없어서 다행이라 여겼지만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는 식으로
믿었던 친구들이 기차가 반쯤이나 갔을 무렵부터
목소리를 높여서 열차 안을 소란스럽게 하기 시작하더니
정동진 간다는 여학생들한테 태백 가자고 조르기까지 하는데
보고만 있자니 손에 진땀이 나기도 하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딸보다도 더 어린 그 여학생들에게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할아버지들이 웃긴다고나 하지 않을까? 후~~
1년만에 온 태백,
역에서 단골 민박집의 봉고차를 타고 산밑으로 이동,
식당에서 황지백숙으로 늦은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나니
술기운까지 더해져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쓰러져 잠이 든다
내일 날씨가 춥기를 바라면서...
새벽 4시,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새벽 기상은 혹독한 체벌이나 다름없지만
언제나 산밑에서만은 예외 중의 예외이다
눈을 부비고 일어나 간단한 세면 후 식당에서 새벽밥을 우겨넣는다
복장을 갖추고 당골광장에 도착하니 5:29, 기온은 영하8도,
조금 더 추웠으면 좋겠는데...
눈꽃 축제를 할 때면 여러 형태의 눈조각들이 가득하던 광장을 지나
본격 산행이 시작되는 등산로로 들어가니 눈이 제법 쌓여 있고
추운 가운데에도 등에는 벌써 땀이 흘러 자켓 앞섶을 풀어놓는다
어둠 속에서도 익숙한 길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다가 하늘을 보니
나뭇가지에 걸린 달이 마치 깎아놓은 사과 한쪽처럼 보인다
이 나무는 어지간한 눈이나 추위 따위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아마도 이 자리에 몇백년을 버티고 있겠지
나하고 만난 것도 벌써 여러번이고...
당골광장에서 3.6키로 올라온 지점, 문수봉 0.1키로 전방에서
올해 처음으로 태백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만난다 (07:19)
해발 1517미터 문수봉에 도착,
떠오르는 해를 맞아 태백의 산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해가 모든 것을 녹일듯하다
잠시 은백으로만 보이던 세상이 해가 있음에 이렇게 달라보인다(↓)
문수봉 정상에 있는 네개의 돌탑 중 하나는 40대 중반의 남자가
무려 3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한다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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