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안 두 여인 이야기서 詩想 포착… 들을수록 감칠맛 나고 정감이 물씬
(21) 정훈희의 ‘그 사람 바보야’
1965년, 어느 봄날. 킹 레코드사 박성배 사장님이 날 찾아왔다. “정 선생님 이 노래는 조애희 씨가 부를 건데, 기막히게 한번 노래 가사를 써주십시오. 꼭 크게 히트할 것입니다. 작곡은 그의 부군인 이동기 씨입니다.”
가수 조애희 씨는 목가풍의 노래를 잘했다.
감미로운 음색은 사람을 묘하게 이끄는 매력이 넘쳤다. ‘산에서 살리라’ ‘사랑해 봤으면’ ‘숲 속의 하루’ ‘내 이름은 소녀’ 등이 그것이다. 아주 매혹적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분위기가 있는 아늑한 술집이었다. 정열적인 클라리넷이 울리는 가운데 이동기 씨가 일하고 있었다.
“일부러 멀리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곡을 한번 들어 보시는 게 노래시를 쓰시는 데 다소 도움이 될까 해서….”
인사를 나누고 술이 몇 잔씩 오고간 뒤, 이동기 씨는 곡을 연주했다. 한마디로 감칠맛이 났다. 정감이 물씬 풍기지가 않는가. 이게 그때 내가 받은 곡에 대한 인상이었다.
‘대중가요의 묘미는 처음 들을 때 솔깃해야 한다. 그리고 인상적이어야 한다. 들을수록 정감이 가고 쉬워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시상(詩想)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 앞줄 좌석에서 두 여인의 이야기…. 두 여인이 나누던 이야기에서 작품 테마의 실마리가 잡혔다.
“얘. 그 사람 어땠니? 지난번 만났던 사람 말야.”
“괜찮았어. 그런대로…. 눈치 하나 없는 것 빼고는….”
“눈치라니?”
“사실은 말이야. 난 그날 미장원에 들러서 가노라고 아침을 걸렀거든…. 그래서 시장했지. 근데, 점심시간이 됐는데, 그 사람 밥도 안 사주고 그냥 가지 뭐니. 바보 같이, 눈치도 없이….”
나는 별반 내키지 않는 이야기로 들었지만 ‘바보같이, 눈치도 없이’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이걸로 하자. ‘그 사람 바보야’로.”
‘단 한번 윙크로 내 마음 줄까봐/ 살짝쿵 윙크한 그 사람 떠났네/ 다시 한번 윙크하면 웃어 줄 텐데/ 다시 한번 윙크하면 사랑할 텐데/ 아~ 나는 몰라/ 그 사람 바보야 그 사람 바보야요/ 아~ 나는 몰라 그 사람 바보야 그 사람 바보야요/ 단 한번 윙크로 내 마음 줄까봐/ 살짝쿵 윙크한 그 사람 떠났네.’
음반 취입 이후, 조애희 씨는 가수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너무 이 노래에 집착한 나머지 생긴 일이었다. 그러나 1970년, 노래의 임자는 따로 있었을까.
정두수 작사·이동기 작곡의 ‘그 사람 바보야’는 정훈희 노래로 히트한다.
어느 대목에서 매료되었을까. 방송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노래방에서….
1967년 정훈희는 ‘안개’로 데뷔, 그해 신인 가수상을 모조리 휩쓴다.
음악 집안 출신인 그녀는 아버지 때부터 가보로 음악을 시작해서 재능을 날렸다.
‘나 혼자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 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박현 작사·이봉조 작곡·정훈희가 부른 ‘안개’다.
‘꽃밭에서’ ‘무인도’ ‘별은 멀어도’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진 정훈희는 ‘국제가요제’와도 아주 인연이 깊었다.
‘칠레 가요제’ ‘도쿄 가요제’가 그랬다. 작곡가 이봉조 씨와 함께 세 번 참가해 세 번 모두 상위권에 입상했다.
정훈희는 정말 노래를 잘하는 가수. 호소력과 가창력은 당대의 절창. 꽃밭에서를 들어보라. 정훈희는 노래 맛을 아는 가수…. 그래서 노래를 맛깔스럽게 부른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 루루루루 루~.’
무인도를 쓴 이종택 작사, 이봉조 작곡. 정훈희가 부른 ‘꽃밭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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