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무대 제스처·매혹적 가창력 입에서 입으로 ‘전파’…폭발적 인기
(31) 나화랑-도미의 ‘비의 탱고’
‘비가 오도다 비가 오도다/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울음과 같이/슬픔에 잠겨있는 슬픔의 가슴 안고서/가만히 불러보는 사랑의 탱고/지나간 날에 비 오는 밤에/임과 마주 서서 속삭인 창살가에는/달콤한 꿈 냄새가 아련히 스며드는데/빗소리 조용하게 사랑의 탱고’
“비(雨)가 몇 도(度)냐?”
“…?”
“허어, 이 사람 귀(耳)하고는…. 지금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는 도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서도 그걸 몰라? 비가 오도다, 비가 오도다…. ‘비가 5도’라고 강조하지 않는가?”
그랬다. 임동천 작사, 나화랑 작곡. ‘비의 탱고’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고 있었다. 마치 인도인 같은 이국적인 마스크에 뿜어내는 열정적인 가창력은 현인의 전성기 때를 방불케 했다.
현란한 무대 제스처와 함께 풍부한 성량으로 노래를 부를 때면 객석은 매료돼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그만큼 도미의 노래는 매혹적이었다.
경북 상주 감나무골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낙동강이 한반도지도처럼 흐르는 곳에서 멱을 감으며 발성을 익혔다. 현인의 창법과 노래 연기는 그의 사표. 그리하여 고등학교를 나오기가 무섭게 작곡가 박시춘을 찾았다. 박시춘은 현인을 발굴하지 않았던가.
그가 박시춘 앞에서 부른 노래는 ‘신라의 달밤’. 박시춘은 도미에게 야인초 작사, ‘신라의 북소리’를 작곡하여 취입시킨다.
‘서라벌 옛 노래냐 북소리가 들려온다/말고삐 매달리며 이별하던 반월성/사랑도 이 목숨도 이 나라에 바치자/맹세에 잠든 대궐 풍경홀로 우는 밤/궁녀들의 눈물이냐/궁녀들의 눈물이냐 첨성대 별은.’
이 무렵은 역사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많았다. ‘방랑시인 김삿갓’ ‘효녀 심청’ ‘사도 세자’ ‘백마강’ 등이 그랬다. 예상한 대로 도미의 노래는 폭발적인 인기였다.
이후, 도미는 박시춘 작곡으로 화려하게 명성을 떨친다. ‘오부자의 노래’ ‘청춘 부라보’ ‘사랑의 메아리’ ‘하이킹 노래’ 등으로….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어여쁜 아가씨는 손잡고 가잔다/그윽히 풍겨주는 포도향기 달콤한 첫사랑의 향기/그대와 단둘이서 속삭이던/바람은 산들불어 불어준다네/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그대와 단둘이서 오늘도 맺어보는 청포도사랑.’
1956년에 발표한 도미의 ‘청포도 사랑’은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질렀다. 포도밭은 이 무렵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였기 때문.
‘금이야, 옥이야. 태자로 봉한몸이/뒤죽안에 죽는구나 불쌍한 사도세자/꽃피는 청춘도 영화도 버리고/흐느끼며 가실 때엔 밤새들도 울었소.’
작곡가 나화랑(본명 조광환)은 경북 김천 태생. ‘나그네 설움’의 작사가 고려성(본명 조경환)과는 친형제. 나화랑이 동생이다. 일본중앙음악학교 바이올린과를 나온 한 때 KBS 경음악단 상임 지휘자로 활약하면서 ‘삼각산 손님’ ‘제물포 아가씨’ ‘도라지 맘보’ ‘향기 품은 군사우편’ ‘닐리리 맘보’ ‘서울의 지붕 밑’ ‘서귀포 사랑’ ‘뽕따러 가세’ ‘웬일인지’ 등을 작곡한다.
특히 데뷔곡 ‘삼각산 손님’을 비롯해 송민도의 노래 ‘내일이면 늦으리’ ‘푸른 꿈이여 지금 어디’ ‘행복의 일요일’ ‘목숨을 걸어놓고’ 그리고 남인수의 노래 ‘울리는 경부선’ ‘무너진 사랑탑’ ‘이미자의 노래’ ‘열아홉 순정’ ‘임이라 부르리까’ ‘정동대감’, 남일해의 노래 ‘이정표’ ‘핑크 리본의 카드’는 그의 대표곡.
‘슬어진 빗돌에다 말고삐를 동이고/초립끈 졸라매면 장원꿈도 새로워/한양길이 멀다해도 오백 리라 사흘 길/별빛을 노려보는 눈시울이 곱구나, 백화난 잿마루에 물복숭아 곱던 밤/아미월 웃어주는 들마루가 즐거워/죽장망혜 늙은 손님 일러주던 글 한수/산허리 굽이굽이 풍악소리 들린다.’
형님 고려성이 작사한 이 노래, ‘삼각산 손님’을 작곡한 나화랑. 그 자신이 노래를 부르려 했지만 형님의 권유로 가수 태성호가 부르게 된다. 작곡가 나화랑은 본디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작곡가 이재호에게 곡을 받아 취입한 적도 있었다.
짧은 생애. 하지만 이 기간에 그는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클래식풍에서 민요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곡을 펼쳤던 것이다.
‘초록 바다 물결위에 황혼이 오면/사랑에 지고 새는 서귀포라 슬픔인가/임 떠난 부두에 울며 불며 새울 때/칠십 리 밤하늘에 푸른 별도 슬퍼라.’
1956년에 가수 송민도가 부른 강사랑 작사, 나화랑 작곡. 클래식풍의 ‘서귀포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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