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32/문화일보)

해군52 2012. 11. 14. 22:48

유명가수 숯가루 바른 대머리서 검은 물 줄줄

<32> 채규엽의 ‘북국 5천킬로’

 

“천하 가수 이 채규엽이 옥(獄)살이를 하고 있다니…. 이건 말이 안 돼!” 그러나 현실이었다. 채규엽은 푸른 죄수복을 입은 채 징역을 살고 있었다. 그것도 창피하게 사기죄로 끌려 와서 철창신세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헌데, 나는 이게 뭐람? 아, 나를 망가뜨린 건, 훌렁 벗겨진 이 웬수놈의 대머리….”

 

한국 최초의 직업가수이자, 대중가요 효시 격인 ‘희망가’를 취입한 채규엽(사진)은 음반가수 제1호이다. 물론 희망가는 번안가요이긴 했지만, 그는 이 밖에도 ‘봄노래’ ‘학도가’ 등을 불러 초창기 우리 가요사를 이끈 선각자였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채규엽은 이미 중학교 때, 독일인 음악가 ‘모이기르크르’로부터 성악을 사사하기도 했다. 도쿄(東京)의 중앙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그는 귀국해 1928년, 서울에서 바리톤 독창회를 갖는다. 풍부한 성량. 남자다운 외모와 체격. 그리고 연기는 청중을 압도했다. 그래서인지 채규엽은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웬만한 출연료가 아니면 무대에 나서지를 않았다. 당시 그는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것. 이 무렵 월간잡지 ‘삼천리’가 실시하던 인기 가수 여론조사에서 늘 1위에 올랐다. 김용환, 강홍식, 최남용, 고복수를 제치고.

 

하지만 세월 앞에 어찌 장사 있으랴. 마흔 줄에 들어서면서 채규엽의 기력은 떨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진다. 인기와 젊음을 생명으로 하는 무대에서는 이건 치명타. 그래서 그는 무대를 아예 포기한다. 젊은 시절에 쌓았던 화려한 명성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채규엽은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려 흥행에 손을 댄다. 그러나 결과는 빚만 지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국 체포돼 형무소로 오게 된다.

 

“아, 이 대머리! 그 누가 있어, 새까맣게 머리털이 솟아나는 약을 개발할꼬?….”

 

장탄식에 장탄식을 거듭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채규엽. 하루는 후배 가수들이 면회를 왔다.

 

“선배님. 우리가 무료 공연료를 모아 빚을 갚았습니다. 곧 풀려날 테니 그동안 건강이나 챙기십시오.”

 

채규엽은 석방이라는 말에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 어느 날. 그날은 형무소 죄수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채규엽도 그랬다. 헌데, 이날. 채규엽은 눈이 뻔쩍 띄는 대머리 특효약을 발견하게 된다. 간수들이 숯불 앞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됐어! 그래, 바로 저거야!”

 

숯불을 보게 된 이후, 채규엽은 그동안 부르지 않았던 노래를 다시 불렀다. 감방에서 때로는 쇠창살을 붙잡고 노래를 불러댔다.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 피나는 노력이었다. 형무소 소장은 그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최선의 조치를 해줬다. 그는 채규엽의 팬이었던 것이었다.

 

‘명색이 사나이란 울긴들 하랴/울음을 웃음 삼아 노래 부른다/내 가슴 벌판 위에 재를 뿌린 그대는/오늘 밤 어디에서 잔을 들고 우느뇨. 외롭다 우는 네가 천진함이냐/야속다 웃는 내가 잔인함이냐/무너진 모래처럼 속절없는 이 몸은/흘러간 그 항구에 옛 곡조를 보낸다. 기타에 울음 실어 꿈은 길고나/퉁기는 가락마다 하소가 인다/오늘은 달도 흐린 그날 밤과 같구나. 잔 들고 우는 밤에 사무쳐라 옛 곡조.’

 

1939년에 부른 박영호 작사, 이재호 작곡 ‘기타에 울음 실어’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비가(悲歌). ‘가슴에 재를 뿌리고 가버린 그대는/오늘 밤 어디에서 잔을 들고 우느뇨’는 이 노래의 절창. 찡한 감동을 주지 않는가.

 

마침내 석방이 돼 무대에 서게 된 채규엽.

 

‘봄도 짙은 명사십리, 다시 못 올 옛 이야기/해당화에 속삭이던 그 님이었건만/서산 너머 지는 해야, 날아드는 갈매기야/포구도 백사장도 꿈이었느냐….’

 

1937년. 콜롬비아 레코드사 문예부장이던 시인 이하윤이 쓴 노래시다. 나비 넥타이를 매고, 연미복을 입은 채규엽은 다양한 제스처를 써가면서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그때는 가발이 없을 때라, 새까만 머리는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채규엽은 지금 대머리가 아닌 새까만 머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고조된 객석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눈길은 5천킬로 청노새는 달린다/이국의 하늘가에 임자도 없이, 흐느껴 우는 칸델라/패치카 둘러싸고 울고 갈린 사람아/잊어야 옳으냐, 잊어야 옳으냐, 꿈도 설다 타국길. 채찍에 무너지는 눈보라가 설구나/연지빛 황혼 속에 지향도 없이, 울며 떠도는 청노새/심장도 타고 남은 속절없다 첫사랑/잊어야 옳으냐, 말도 운다 타국길.’

 

오랜만에 선 무대. 그러기에 채규엽은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 특히 대미(大尾)를 장식할 ‘북국 5천킬로’는 신명나는 폭스 트로트, 온몸에 비오듯 땀이 흐르건만 더 신나게 노래를 불러댔다. 그런데, 그때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채규엽의 새까만 머리가 훌렁 벗어지고 있었기 때문. 이날 그가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머리에 발랐던 건 숯가루였다. 이게 땀에 씻겨 흘러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