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세상을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며 구경하던 시절, ID라는 게 없으면 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 만들긴 해야겠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40여년 동안 부르던 내 이름을 그대로 영어식으로 써 보았다. nsl, nslee, namslee... 이런 것들은 이미 등록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에는 navy, navylee를 쓰려고 했더니 이 역시 대부분 등록되어 있었다. 그 다음에는 navy69, navynams였는데, 이것까지도 가끔씩은 등록된 경우가 있긴 했지만 둘 중 하나는 가능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내 ID는 navy69 아니면 navynams를 쓰게 되었다.
그럼, 왜 하필이면 해군navy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모자라서 대학원까지 다니다 보니 군대 가는 게 늦었다. 게다가 또 다른 이유로 1년이 더 지나고 나니 아주 많이 늦었다. 육군 사병 영장이 나왔는데 사병으로 가면 완전 고문관 노릇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이미 결혼까지 했으니 사병 가기는 더욱 어려웠다.
궁하면 통한다던가, 마침 해군 장교 모집이 있었다. 그것도 전반기 선발한 인원에 문제가 있어 보충으로 소수만을 모집하는 기회였다. 놓칠 수가 없었다. 일단 응시해 놓고, 육군 사병 영장 나온 것은 병무청장을 상대로 청원서를 제출해서 다시 한 번 연기하고, 이런 난리 끝에 해군에 합격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 졸업 후 3년 반이나 지나서야 훈련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학 마치고 바로 해군 장교로 간 친구들은 이미 제대한 후에 나는 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해군본부에 갔더니 군의관 하는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 "야, 너 인제 뭐 하러 군대 오냐?"고 했지만 난들 달리 무슨 방법이 있었겠나?
유난히도 무더웠던 8월 어느 날 고속터미날에서 아내와 눈물의 이별(!)을 하고 고속버스를 탔다. 진해에 가서 해군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보니 상당히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정작 나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장교 훈련인데 뭐 별거 있겠냐? 훈련이야 운동 삼아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담담하게 말하면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알 리가 있겠나? 친구들의 걱정 어린 눈빛이 무슨 의미였는지는 훈련소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18주 동안의 훈련은 내가 다시는 경험해 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어느 군대 훈련이 힘들지 않겠냐만, 해군 장교를 양성하는 해군 특교대(보통 OCS라고 부름) 훈련은 UDT나 공수부대 같은 특수목적부대를 제외하고는 장교, 사병을 통틀어서 가장 혹독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혹시 20년쯤 전에 리차드 기어가 해군 장교 후보생으로 나오는 <사관과 신사>라는 영화를 기억하는 분이 있는지...
그 영화에는 훈련 중 댄스파티를 한다든가 하는 우리하고는 전혀 다른 내용이 많긴 했지만 훈련받는 과정은 실감나게 나온다. 내가 막 훈련을 마치고 소위 계급장을 달고 나와서 중앙극장에서 그 영화를 두 번이나 보았다.
여하튼 해군 특교대 69기(그래서 69라는 숫자를 붙였을 뿐^^) 18주 훈련을 마치고 해군 장교로 3년 동안 복무했다. 그 3년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금도 해군 장교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18주 동안의 해군 특교대 훈련은 내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 본 값진 기회였다. 상세한 얘기는 팬들의 요청이 있으면 다시 하도록 하겠다.
이런 사항은 국가 일급기밀이긴 하지만 살짝 공개하는데, 해군 특교대 출신들은 이런 공통점이 있다. 해군 장교, 특히 특교대 출신의 사윗감을 만나면, 일단 무조건 합격시켜도 전혀 문제없다.
- 머리가 좋고 건강하다
- 책임감이 투철하고 정신력이 강하다
- 미남에 멋쟁이고 약간의 바람기가 있다
(물론 나와 같이 아주 드문 예외도 있다!!!)
* 주 :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내 ID에 대한 질문이 많아서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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