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가끔씩 날벼락같은 일을 겪게 된다. 지난 여름 언제쯤이었던가, 아주 무덥던 날이었다. 딸애가 폭탄선언을 했다. 집을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순간 더위가 싹 사라져 버렸다.
<아니 아직 입에서 젖 냄새가 나는 애기가 가출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그리고 며칠 후 딸애는 정말 짐을 싸들고 나섰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바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야 만 것이었다. 게다가 어린 딸의 가출을 말려야 할 제 엄마까지 나서서 짐을 싸 주고 그야말로 난리 가관이었다. 나는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날 밤 대학교 2학년인 딸애는 그렇게 학교 기숙사로 가 버렸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무슨 놈의 학교가 서울에 집이 있는 여자애를 기숙사에 받아주는지...>
딸애가 나가 버린 그날 밤, 빈방을 들여다 보면서도,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루나 이틀쯤 지나면 다시 돌아오겠거니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한동안은 집에 들어오면 혹시나 하면서 딸애의 방문을 열어보곤 했지만 그때마다 역시나였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달려와 반갑게 안아주던, 힘들고 지친 날이면 옆에 앉아 재잘대며 피로를 잊게 해 주던, 그 딸애는 그렇게 집을 나가서는 주말이면 잠시 집에 와 있다가 일요일 밤이 되면 한밤중에 또 집을 나가 버리곤 했다. 그나마 어떤 주에는 아예 오지도 않았다. 이제 벌써 2달이 지났다. 가끔씩 전화라도 해 보면 목소리가 너무 씩씩했다. 아빠, 엄마가 보고 싶다고,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해야 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래, 이건 배신이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딸애의 배신이 내게 준 마음의 상처가 너무나 크다. 집을 떠나 버린 딸애의 빈자리가 너무 넓다. 하루 빨리 돌아와 주기를 바라지만, 이제는 내가 단념해야 할 것 같다.
<빨리 겨울방학이라도 되면 집에 와 있으려나...>
언젠가는 어떤 멀쩡한 놈을 데리고 와서는 결혼하겠다고 하겠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 된다고, 아니면 그렇게 하라고? 어찌 됐든 언젠가는 결혼을 할거고, 그때에는 정말 신나게 짐을 싸들고 뒤도 안 보고 가버리겠지. 언젠가는 말이다. 그때에는 또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지금 학교 기숙사에 가 있는 것만도 이렇게 서운한데 말이다.
* 주 : 위 사진에 있는 딸이 대학 2학년 때 기숙사에 들어간 사건(?)이다. 그 후 예상대로 멀쩡한 놈(!)을 데려왔고 올해가 결혼 1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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