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내가 좋아하던 각종 운동-테니스, 스포츠댄스, 축구, 등산, 마라톤-에 이어 얼마 전부터 국선도를 시작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난히도 열 받는 일이 많았었지만, 누구에게 화풀이할 수도 그렇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나 자신의 원죄나 전생의 업보 때문이거니 하면서 마음을 달래보다가 그래도 안 되면 산속으로 들어가 바윗길을 오르거나 강변을 마구 달리곤 했다.
어찌보면 그것은 운동을 빙자한 자학의 몸짓이었다. 40여년 동안 여린 영혼을 담아 주었던, 그리고 아무런 잘못도 없었던 내 육신은 이런 자학행위에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무릎에서 시작한 아픔이 다음에는 허리로, 그 다음에는 왼쪽 엉덩이로 옮아가서 아예 붙박이가 되어 버린 듯했다. 다리가 저려오기까지 했다. 누워 있는 자세가 불편해서 잠자기조차 불편했다.
친구인 정형외과 원장은 마라톤 은퇴하고 쉬라고 했다. 그렇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이런 짓까지 못한다면 나더러 어찌하란 말인가!"
누구를 향한 건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냥 뛰어 버렸다. 아픔은 더해만 갔다.
"이러다 정말 다 망가지는 거 아닌가?"
무릎과 허리가 완전히 망가진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래선 안 되지, 방법을 찾아 봐야지. 그래,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월간지에 난 광고를 보고 한 통증크리닉을 찾아갔다. 잠실에 있는 소노이드 통증크리닉이었다. 원장인 마취과 의사는 진찰을 하더니, 온몸의 근육이 워낙 심하게 굳어 있어 쉽지는 않지만 1달 정도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했다.
"1달이라, 그래 해보자. 다시 뛸 수만 있다면..."
매일 아침 잠실로 출근해서 2시간씩 치료를 받고 나면 오전시간이 끝나버렸다. 열흘쯤 지나자, 차츰 낫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1달이 되자 아픔의 80% 이상이 사라졌다. 운동을 다시 할 수 있을 만했다. 시간과 치료비가 좀 들긴 했지만 성공적인 일이었다.
"이제 치료는 그만 하고, 나머지는 운동을 해서 풀어야지"
등산과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려 했지만 1년이라는 세월의 갭은 참 길었다. 1년 전처럼 생활화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은 ~ 때문에 또 다음날은 ** 때문에 운동을 못하곤 했다.
"이래선 안 되는데..."
그러던 차에 친구 부부가 국선도를 권유했다. 인터넷을 뒤져 전화번호를 찾아내고 곡절 끝에 강남역 부근의 국선도 수련장을 찾아가 등록을 했다. 머리를 뒤로 묶고 수염을 기른 젊은 도사를 만나 나의 국선도 수련이 시작되었다.
아주 단순한 몸동작, 스트레칭 체조, 누워서 하는 어린아이 같은 호흡...
"이런걸 계속 하면, 과연 나도 도사가 될 수 있을까?"
재미없는 수련을 며칠동안 계속하면서 차츰 괜찮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수련 시작 2주째 어느날 누워서 호흡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수련이 끝나고 나자 보조수사가 웃으면서 "잘 주무셨어요?"라고 했다. 아마 내가 코를 골았던가 보다.
그러고 보니 엉덩이에 붙박이처럼 남아있던 통증이 많이 사라져버렸다. 수련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누워서 호흡을 하려면 왼쪽 엉덩이의 통증을 피하기 위해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긴장을 풀 수가 없는 상태였고 그 자세로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후 화장실에서 또 다른 일을 경험하였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시작하는 하루 일과가 그리 쉽지 않았었는데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원인을 생각해 보았지만 국선도 수련밖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로서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커다란 효과를 본 셈이다.
나의 국선도 수련이라야 이제 겨우 초보 수준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효과를 보고 있다. 몸이 굳어버린 중년에게는 몸과 함께 마음까지도 다스릴 수 있는 국선도가 아주 적합한 운동이라고 생각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있다.
앞으로 둔갑술이나 축지법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수련을 계속하려고 한다.
* 주 : 한때 국선도 준비운동을 열심히 한 적은 있었지만 결국 나의 국선도는 초보 수준을 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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