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가까운 청계산은
서울과 성남, 과천, 의왕에 걸쳐 있는
그리 높지 않지만 산세가 크고 계곡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다.
서초구나 성남 수정구 방면에서 올라가면
길은 대체로 호젓하고
길가에는 약수터도 있어서
조용한 산책을 즐기기에 알맞은 곳이다.
양재동 하나로마켓을 지나 옛골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개나리약수터>라는 푯말이 보인다.
이 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작은 약수터가 있고
그 뒤로 옥녀봉에 오르는 황톳길이 이어지는데
길은 맨발로 갈만큼 부드럽고
주변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삼림욕장이다.
그 길을 따라 10여분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갈림길에 서 있는
<입맞춤길>이라는 푯말이 눈길을 끈다.
그 자리를 여러번 지나가면서도
점잖은(?) 동행들이 있는지라 그저 눈길만 주다가
며칠전 혼자 그 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학구열 내지는 탐구심이 워낙 강하게 발동하는지라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었고...
(나는 셩복차림 뿐만 아니라 이런 푯말도 잘 본다)
좋은 일이 생기지 않으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뿌리치고 돌아나와야 한다고 굳게 다짐을 하면서
그 길로 들어섰는데...
겨우 열발자국쯤 가니까 다 들여다 보이는데
아니 이게 뭐야?
이거 순 사기 아냐?
그저 조금 넓은 공간에
1미터가 조금 넘을 듯한 돌탑이 하나 서 있고
멀리 과천 경마장 쪽이 바라다 보이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입맞춤할 상대도 보이지 않고
그럴만큼 분위기 있는 곳도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실망감과
또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그곳에서 잠시 쉬면서 생각해 보았다.
(여전히 뭔가를 기대하면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멋진 입맞춤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카사블랑카>에서처럼 안개낀 공항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처럼 떨리는 가슴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처럼 정열적으로
입맞춤하던 그런 일이 나에게도 있었을까?
있었나?
없었나?
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사이라면
눈빛만 보아도 불꽃이 튀는 사이라면
바로 여기 <입맞춤길>에서도 가능하겠지?
산에 혼자 앉아서 또한번 꿈을 꾸었는데
이거
이룰 수 있는 꿈인지
이룰 수 없는 꿈인지
오늘밤 꿈속에서 확인해 볼 수 있으려는지...